불타는 미국-'화씨 9/11'

입력 2004-07-01 09:33:28

지난달 25일 개봉 하루 만에 4만9천달러를 벌어들여, 지난 1997년 '맨 인 블랙'이 가지고 있던 4만3천435달러의 기록을 깨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화제의 영화 '화씨 9/11'(Fahrenheit 9/11.마이클 무어 감독)이 16일 국내 스크린에서도 베일을 벗는다.

올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 영화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겨 있기에 전세계가 궁금해 난리일까. 특히 국내에서는 고(故) 김선일씨 참수사건, 이라크 파병반대 등 부시 정권에 대한 반대여론이 심상찮은 가운데 개봉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무 것도 보여 주지 않는 빈 화면 뒤에서 터지는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울부짖음으로 막을 올린다.

너무도 끔찍해서 눈뜨고 볼 수 없는 그 장면은 바로 지난 2001년 전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9.11 테러 사건. 영화는 정확히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인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이어 영화는 대서양을 건너 아시아로 눈길을 돌린다.

영화 속 뉴스릴 장면은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는 땅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압제에 시달리는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세우고 핵무기를 제거한다는 구실로 이라크를 무차별 폭격하는 광기 어린 미군의 모습을 담는다.

개봉만으로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를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는 평가는 영화 곳곳에서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지방의 한 유치원을 방문 중이던 부시는 참모진으로부터 이 충격적인 보고를 받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뒤로한 채 느긋하게 동화책을 읽는 장면이나, 골프장까지 찾아온 카메라 앞에서 대 테러전쟁에 나서겠다며 강력하게 선포한 후 "난 지금 드라이버 샷 중이었소"라며 여유 있게 필드로 나가는 뉴스릴 장면은 무어 감독의 의도대로 연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실소와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느낌이다.

게다가 이라크로 보낼 미국 청년들을 모집하면서도 뒤에서는 "이라크 석유와 미국민의 피를 섞어 어떻게 하면 이윤을 창출할까"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이 영화가 왜 부시에게 보여서는 안될 영화인지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최강대국의 지도자에 대한 공개돼선 안될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열었다는 점이 아닐까. 영화는 부시 일가와 사우디 왕가, 빈 라덴 일가 사이의 개인적 우정과 사업적 연계성이 실패한 텍사스 석유재벌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영화 내내 그들의 검은 거래를 파헤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부시와 정치권의 희화화가 아닌 듯하다.

미국은 왜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이라크의 무고한 민중들과 전쟁 속으로 내몰린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은 왜 죽어야 하는가? 마이클 무어는 궁극적으로 이 전쟁이 치러야 할 희생의 대가가 과연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부시와 빈 라덴의 은밀한 관계(?)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적, 이라크 전쟁의 비도덕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영화 '화씨 9/11'은 제목처럼 뜨거운 영화다.

16일 개봉, 상영시간 110분.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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