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장마의 시작과 함께 2004년도 반환점을 돌았다.
올 상반기 안방을 찾은 한국 드라마들은 몇몇 눈에 띄는 작품들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수준이 지난해에 못 미친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루한 스토리에 상투적인 소재, 비슷한 에피소드의 반복 등이 부쩍 잦아진 비 소식만큼이나 칙칙하다.
특히 코믹, 재벌 2세, 러브 판타지는 2004년 안방을 찾은 드라마들을 관통한 3가지 키워드로 꼽힌다.
◇웃겨야 산다
30대 미혼 여성들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솔직하게 풀어내 여성들의 환호를 받았던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 그 인기 이면에는 치질에 걸린 엉덩이를 첫 사랑인 담당 의사에게 내 보이고 투견장에서는 개에게 물리며 비닐하우스 도박판에서 아줌마 가발을 쓰고 껌을 짝짝 씹어대던 엽기발랄 여기자 신영(명세빈)이 있었다.
앞서 방송된 MBC 드라마 '천생연분'에서는 6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서로 "땡 잡았다"며 결혼에 골인한 석구(안재욱).종희(황신혜) 커플이 연신 "우리 쫑"을 연발하며 시청자들을 웃겼다.
이 같은 웃음 코드의 강화는 지난해 일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MBC '대장금'부터 이미 감지됐다.
이병훈 PD는 전작 '허준'에 비해 임현식, 금보라 등 감초 조연들의 극중 활용도를 키우는 방법으로 코믹함을 보다 강조했다.
그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종사관 나리' 지진희가 내내 깨지고 망가졌던 SBS '파란만장 미스김의 10억 만들기'와 만화적인 요소를 가미했던 '백설공주'도 웃음에 승부를 걸었던 작품들이다.
◇세상은 넓고 재벌 2세는 많다
SBS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MBC '황태자의 첫사랑', '영웅시대', KBS '북경 내 사랑', '백만 송이 장미', '꽃보다 아름다워'…. 모두 재벌 2세가 등장하는 드라마다.
일일극 뿐 아니라 주말극과 미니 시리즈까지 도대체 재벌 2세가 없는 드라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방영 초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MBC 드라마 '황태자의 첫 사랑'은 제목부터 "나는 재벌 2세"라고 떠벌리고 있고 한 술 더 떠 MBC '영웅시대'는 재벌이 아예 영웅의 자리에 등극했다.
MBC '불새'에서 이은주를 무던히도 사랑하던 에릭도 재벌 2세, KBS '북경 내사랑'의 김재원은 한국 굴지의 전자회사 오너의 망나니 아들이다.
여기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병원장 아들 이현우나 '사랑을 할거야'의 대기업 이사 강석우까지 더하면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쯤 되면 돈 걱정 같은 건 안 하고 사는 게 인지상정이 된다.
재벌 2세는 제작 상 한계로 디테일한 전문성을 가진 드라마가 제작되기 힘든 현실에서 볼거리나 갈등 구조를 만드는 유용한 수단이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시청자들은 대개 현실에서 먼 이야기일수록 즐거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제작진들이 손쉽게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소재를 관성으로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사랑밖에 난 몰라
"여자들은 가끔 그런 상상을 하거든요. 화려한 사람들 틈에 나 혼자만 시든 꽃처럼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내 이름을 불러주고 흐트러진 머리칼 가만가만 쓸어 넘겨주는 상상…". ('파리의 연인' 중 강태영의 대사)
이보다 더 노골적일 수 있을까. SBS '파리의 연인'은 애초부터 신데렐라 스토리를 표방한 드라마다.
여주인공 강태영(김정은 분)은 차갑고 이해 타산적인 박신양과 따뜻하고 자유분방한 이동건 사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인다.
'불새'는 비현실적이고 노골적인 여성 판타지이고 '황태자의 첫 사랑'은 호텔 재벌 2세와 평범하지만 당찬 여성의 사랑이야기다.
러브 판타지에 화면 가득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광은 필수 요소다.
'파리의 연인'의 경우 극 초반 몽마르트르 언덕, 니스 해변,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를 배경으로 세련된 화면을 선보였다.
'황태자의 첫 사랑'은 흰 눈이 내리는 일본 삿포로와 야자수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 발리의 전경을 내세웠다.
톱스타 비와 송혜교가 호흡을 맞춘 '풀하우스'도 태국 푸켓에서의 허니문 장면으로 안방을 찾는다.
대경대 연극영화광고학부 정희원 교수는 "소극적 관객인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려면 초반에 자극적인 눈요깃감이 필요하다"며 "이슈를 만들어내려는 제작진의 욕심과 함께 우연으로 점철된 러브스토리를 해외의 멋진 풍광으로 포장해 낭만적인 판타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사진: MBC '불새'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