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맛을 찾으라면 단연 황남빵이다. 황남동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직 그 비법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황남빵은 조상대대로 집안에서 팥으로 빚어 먹던 것을 독창적으로 개발한 최씨집 가업으로 신라천년고도 경주에서만 만날 수 있다.
경주를 찾은 외지인들이 돌아갈 때 반드시 찾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엷은 껍질 속에 터질 듯 꽉찬 팥 앙금의 고소한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유명세로 인해 황남빵은 만들기 바쁘게 팔려 나간다.
관광시즌에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씩 기다려야 하고 관광버스가 닥칠 때는 순식간에 빵이 거덜난다. 진품 황남빵을 생산하는 곳은 최씨 집안뿐인데 전국에서 소비자를 현혹하는 유사빵도 많다.
황남빵은 경주시 황오동에서 선친으로부터 전수받은 황남빵 대표 최상은(崔相恩.53)씨와 부인 정복순(52)씨가 65년째 전통명품을 만들어오고 있다.
정학구 실장으로부터 황남빵의 유래를 들은 후 안내를 받아 제조실에 들어서는 순간 종업원이 다가와 깨끗한 위생복 한벌을 내어주고 갈아 입으란다. 몸집이 커서 위생복 차림이 어색한데도 옆에 있던 정홍구(50) 전무가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제일 먼저 황남빵의 독특한 맛의 비결이 궁금했다. 전공정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는 제조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팥 가공실로 향했다. 팥가공실은 외인 출입을 막고 있다. 밖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바쁜 일손을 멈추고 낯선 사람에게 시선을 준다.
황남빵 제조과정을 배우러 왔다는 이영희(37) 공장장의 소개에 윤분선(60)씨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팥 가공실에서만 30년 일했지만 아직 황남빵의 신비를 터득하지 못했는데 하루만에 뭘 배우겠다는 건지…"라며 핀잔을 준다. 나중에야 "이왕 왔으니 구경이나 실컷 하고 가시라"며 껄껄 웃어댄다.
"덩치가 커서 힘든 일은 잘하겠구먼…". "꼭 배우고 싶으시면 팥이나 옮기시죠". 정학구 실장 안내로 팥 창고로 쫓겨난다.
창고에 가득한 40kg들이 팥 포대를 어깨에 메고 가공실까지 운반하기가 쉽지 않다. 땀을 뻘뻘 흘리고 다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금세 앞을 막아선다.
이 많은 양의 팥을 어디서 구하는지 궁금하다. "강원도와 충청 제천지방에서 생산되는 최상품을 선별해 사들인 후 자체적으로 팥소를 생산하고 있지요". 정 실장은 "그렇기 때문에 황남빵 특유의 맛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다"고 한다.
"여기 팥 세척하는데 거들지요". 공장장의 명령에 선별된 팥을 세척하고 세척된 팥은 가마솥에서 삶는다. 이를 분쇄하고 나서 3, 4시간 이상 달인 후 팥소를 만든다. 이 팥소를 사용하여 정백당과 계란을 넣고 반죽한다.
다시금 작업대에 엷게 깐 밀가루로 반죽을 완성하고 깍두기 크기만큼 잘라내어 팥소를 넣은 다음 표피를 마감하여 성형한다. 빵을 만드는 최씨의 손놀림이 기계처럼 빠르다.
"팥소가 너무 적게 들어간 것 같네요". 손을 깨끗하게 씻고 반죽된 밀가루를 떼어 팥소를 넣어 정성을 쏟고 있는데 '팥소가 적다'며 정진필(38)씨가 한마디한다. 빵모양 위에 국화문양, 와당모양을 일일이 손으로 찍어 모양을 내고 계란을 살짝 바른다. 밑불을 약하게 하고 좌우의 윗불은 중간 불로 가열온도를 조절하여 마지막으로 구워낸다.
주재료인 국내산 붉은 팥은 당질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고 물엿은 감미가 있는 투명한 정조액으로 건조를 막고 식욕을 돋운다. 인공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들어있지 않아 싱겁지도 끈적이지도 않는 단맛이 입맛을 당기는 비결이요 특성이다. 밀가루 반죽표피가 30%, 팥소가 70% 비율로 잘 어우러져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온종일 제조과정을 빼놓지 않고 장인 최씨 뒤를 따라 열심히 일했지만 황남빵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은 캐내지 못했다. 팥 가공실만큼은 최씨 부부를 제외한 외인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일까?
바깥 주차장에는 차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다. 황남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진풍경이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황남빵은 전국에 체인점이 없어 경주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한시간쯤 기다리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1999년 행정자치부 주관 지역 고유의 맛과 멋이 담긴 대표적인 농특산품과 민공예품을 중점 육성하기 위한 '1지역 1명품'육성사업에서 경북도 명품 제2호에 선정됨으로써 생산자가 1인인 식품으로 최초로 인정됐다. 그 밖에 경주에서 열리는 각종 국내외 문화행사 등에 공식지정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 전무는 "3대를 이어온 전통있는 최씨 가문의 명품으로 장인정신이 없으면 생산하기 어렵다"면서 "대물림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유사빵에 대한 규제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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