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보인다 보여

입력 2004-06-24 16:51:42

따지고 보면 겨드랑이 털이나 '거기' 털이나 다를 게 뭐 있나?

당장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꼬들꼬들한 생김새며 길이, 분포도, 색깔이 똑같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거기' 털은 금기 중 금기다. 조금만 보여도 가차 없이 잘린다.

그러나 정말 희귀하게도 80년대 말,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대구 아카데미극장이었다. 평일이라 손님도 많지 않은 편. 영화는 야한 외국영화였다. 테니스를 치는 여자의 짧은 스커트 자락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그렇고 그런 에로물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영화관에서 본 여인의 전라 모습. 영화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올 누드 여인이 스크린을 꽉 채웠다.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히프, 매끈한 허벅지 라인이 발끝까지 이어지는 멋진 포즈였다. 늘 그랬듯이 여인의 뒷모습이다. 그런 여인이 몸을 뒤튼다. 관객 앞으로 전면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잘리겠군! 아니면 상체 미디엄 쇼트로 전환되거나.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 여인의 전면 풀 숏이 와이드 스크린을 채웠다. 물론 시선은 여인의 '거기'로 쏠렸다. 모자이크나 흐릿한 포그처리가 안된, 또렷한 여인의 '모습'. 과연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기대하지 않았던 '횡재'에 숨이 콱 막혔다. 에로틱을 느끼지도 못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가슴부터 쿵쾅 쿵쾅 뛰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줄리아'였다. 그 여인은 바로 실비아 크리스텔. '엠마뉴엘'을 시작으로 '개인교수''마타하리''차타레 부인의 사랑' 등 성애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가 아닌가. 여성의 성기가 나온다고 희대의 '엠마뉴엘'까지 수입 금지돼 있던 그 시절 실비아 크리스텔의 '거기'를 볼 수 있다니. 그건 분명 '사건'이었다.

지금도 의문이다.

아직도 영화법은 성기노출을 금지하고 있다. 80년대라면 가위의 날이 더 서슬 퍼런 시기가 아닌가. 예술영화도 아닌 성애영화에서 여성의 성기가 노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미스터리의 첫 번째는 유통 과정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초 공륜에 의해 잘린 필름을 틀어야 되는데, 여차 저차해서 원본 프린트가 배달됐을 수 있다는 가정. 그러나 그 가정은 영화관에 대한 단속이 어느 때 보다 엄했던 때라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품'이란 말인가.

88년 대한민국의 '흥청거림'을 유추해 볼 수 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에로틱에 있어 유례없는 자유를 맛보았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의 3S 정책이 빛을 발하던 시기다.

그래서 '자유로운 대한민국'에는 숱한 성애 영화로 물결쳤다. 한 예로 나이트클럽에서는 여성 댄서가 올 누드로 출연해도 단속이 되지 않았다. 발가벗은 몸으로 테이블을 돌면서 손님들의 팁을 거둬가기도 했다. 나이트클럽의 조명이 어느 정도 커버를 했지만, 그래도 '잘 빠진' 여인의 전라를 옆에서 구경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 연장선에 '줄리아'가 있었지 않을까.

이 사건은 이후 '대한민국 정부'를 대하는 시선에 일대 '삐딱함'을 가지게 됐다. 저들 편한대로 영화를 재단하는 오만함이라니. 그러고 보니 '줄리아'의 원제가 '오만'(The Arrogant. 1987)이다. 미국에서 출시된 비디오 제목은 '실비아 크리스텔의 욕망'(Sylvia Kristel's Desires).

어차피 실비아 크리스텔 얘기가 나왔으니, 다음주에는 그녀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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