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기자의 영화보기-인질과 할리우드 영화

입력 2004-06-24 09:17:22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으로 착각하지 말라'.

미국의 인질 협상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인질 생존법' 제1조다.

현실은 전혀 영화 같지 않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 하필 할리우드 영화일까. 그건 할리우드 영화가 갖는 비현실적인 지향점 때문이다.

사실 달콤한 미래와 꿈, 환상을 빼면 할리우드 영화는 '껍데기'뿐이다.

온통 보랏빛 달콤함으로 그려진 여배우 브로마이드 같은 영화가 그 현주소다.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할리우드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편협하다.

한때 우리나라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능가하는 사회적 구조로 돼 있다.

현재 개봉 중인 '투모로우'가 부시 행정부에 '누'가 될까봐 영화제작사가 노심초사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군을 소재로 한 영화는 더하다.

톰 크루즈가 미 해군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는 영화 '탑건'. 이 영화에 항공모함이 동원됐다.

연료 값만 하더라도 수억 원이 들어가지만, 제작사는 단돈 25달러에 빌렸다.

미군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베트남전을 다룬 '지옥의 묵시록'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필리핀 군부에 애원해 겨우 헬리콥터를 빌려 영화를 찍었으며, 미군 내 폭력을 그린 '어 퓨 굿맨'도 촬영장을 임대하는데 곤욕을 치렀다.

대부분 액션영화의 단골 메뉴인 '인질, 납치'는 어떨까.

가장 다루기 힘든 납치범들이 정치적 신념을 지닌 집단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는 그들의 속셈에 돈을 은근슬쩍 집어넣는다.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물 '다이하드'의 인질범도 거창한 이념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돈을 노린 '좀팽이'들로 결론을 맺는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트루 라이즈'는 인질범을 정말 멍청한 아랍인으로 설정해 아랍 국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더 록'의 반란군인들도 명예회복보다는 돈을 노린 집단으로 그렸다.

24시간을 영화를 보듯 가슴 졸이며 지켜본 '김선일씨 납치'가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었다.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 김선일씨의 죽음은 정말 비통하다.

그러나 그 사태에 대처하는 한국은 지극히 할리우드 영화를 보듯 했다.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생존 확인''협상시한 연장' 등의 보랏빛 전망으로 일관했다.

그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데드 라인'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한국은 '할리우드 영화' 보듯 대처한 것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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