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행정수도 국민투표 '우왕좌왕'

입력 2004-06-19 11:13:53

"노무현 대통령의 포석에 또다시 말려들고 있는 기분이다".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18일 기자회견 이후 한나라당내 분위기는 이처럼 가라앉아 있다.

노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공약을 지키라고 목소리는 높이고 있으나 정작 국민투표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당론은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도 예의 신중함을 고수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국정의 책임자인데 야당이 그 문제를 책임져야 하느냐"며 노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한 뒤 "대표가 이야기하면 당론으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신중함을 넘어 무책임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준 것이 족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통과시켜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반대하는 것은 무슨 논리냐는 여권측의 공격에 뚜렷한 반대논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상황의 반전을 위해 특별법은 절차법으로서 수도이전을 결정한 법은 아니었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웠다.

이한구(李漢久)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통과된 특별법은 행정수도 이전 준비에 필요한 절차를 밟으라고 허용해 준 법률이지 수도이전을 확정짓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이 법에 근거해 만들어졌고 문제가 되고 있는 헌법기관 이전도 국회동의를 요구하는 조항이 특별법에 들어있어 한나라당의 절차법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는 특별법 통과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통한 정면돌파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국민사과를 통해 당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행정수도 이전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자는 것.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가 1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원내과반 정당으로서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하고 졸속처리해준 잘못이 크다"고 사과한 것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의 한 가닥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는 3선 그룹이 주도하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서울지역 의원과 영남지역 의원들도 대거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여전히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당장 접점이 찾아지기는 어려워보인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여론이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국민투표까지는 많은 변수가 예상되는데다 실제 투표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반영될지에 대해서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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