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이야기-(11)목소리

입력 2004-06-18 10:09:11

무수한 악기가 있지만 사람의 목소리야말로 신이 내린 최고의 악기이다.

목소리가 그 어떤 악기보다 다양한 음색과 표현을 가진 것은 후두, 턱, 혀, 입술 등의 발성기관의 움직임에 따라 공명의 양상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같은 음정을 내더라도 소년합창단과 비교할 때 여성 소프라노 합창단의 소리가 훨씬 더 '깊게' 들리는 것은 성인 여성의 머리가 소년보다 커, 낮은 공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파리넬리'라는 영화를 보면 생식기를 제거한 남자 소프라노 즉 '카스트라토'가 나온다.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소프라노에 필적하는 고음과 화려한 기교.힘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음악회장을 찾은 귀부인들을 졸도시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내시가 그러했듯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셉 하이든도 하마터면 카스트라토가 될 뻔했다.

하이든의 아버지는 미성의 소유자인 아들을 카스트라토로 만들 작정으로 수술 날짜까지 잡았다.

그러나 소년 하이든이 수술 당일 배탈이 나는 바람에 수술이 사흘 연기됐고 그 사이 아버지의 생각이 바뀌어 하이든은 카스트라토 신세를 모면할 수 있었다.

목소리의 최초 발원지는 성대이다.

후두 안에 있는 한쌍의 주름인 성대의 길이는 성인 남성의 경우 평균 2cm, 여자와 어린이는 평균 1.5cm, 0.9cm에 불과하다.

성대에서 출발한 최초의 소리는 작기 때문에 구강과 입술, 두개골, 몸통 등 여러 공명강을 거치면서 증폭된다.

세상에는 온갖 발성법이 있다.

중국 경극(京劇)에서 사용하는 '진흙소리'라는 발성법은 성대를 극도로 바짝 죄는 방법으로 독특한 소리를 낸다.

숨을 들이마실 때 소리를 내는 이색적인 발성법도 러시아에는 있다.

우리의 판소리는 독특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판소리에서 득음의 경지는 가혹할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성대 혹사를 통해 이뤄진다.

목소리를 많이 내다 보면 성대가 충혈되고 부어올라 목이 쉬게 되는데 판소리는 의도적으로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흔히 '목에서 피를 세 말은 흘려야 명창'이라는 말이 있지만, 국악인들에 따르면 실제로 피를 토할 정도는 아니고 성대를 계속 쓰다보면 실핏줄이 터져 양치 때 피가 섞여 나온다고 한다.

머리를 울린 소리가 고막을 통해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는 정작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성악가들도 자기 귀를 과신한 나머지 소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면 녹음기부터 챙기는게 좋다.

녹음기 속의 자기 목소리와 친해지는 것이 노래 잘 부르기의 첫 단추이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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