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은 내가 지킨다-스트레스는 생존의 필수 조건

입력 2004-06-15 09:11:42

기원전 8천년의 초여름 새벽녘, 대구 동구 불로동 고분지대의 움막에서 잠을 자던 한 부족의 수장은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본능적으로 잠이 깼다.

밖에 나가보니 두 마리의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위협하고 있었다.

부족장은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돌도끼를 집어 들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전투준비 태세로 돌입했다.

머리 속의 뇌하수체 전엽이 자극되며 콩팥에 붙어 있는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장박동이 증가한다.

혈관의 압력도 증가하며, 손발에 땀이 나고 근육이 긴장된다.

순간 에너지를 최대로 얻기 위해 혈액내 포도당과 중성지방 분비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늑대들과 1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늑대들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고, 부족장은 배고픔과 피곤함이 몰려와 아침식사를 맛있게 한 뒤 다시 움막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서기 2004년의 초여름 새벽녘, 역시 불로동에 사는 모 섬유회사 김 과장은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직장 상사인 최 부장의 앙칼진 목소리. 김 과장은 자세를 고쳐 앉았고 어제 보낸 중국과의 수출상담 메일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질책을 받았다.

그 순간 김 과장의 몸 속에는 1만년 전 그의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만들었던 전투준비 태세의 방어기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혈압이 오르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근육은 경직된다.

혈당치와 혈중 지질의 농도가 상승하였고 전화 후에 다시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김 과장에게는 피땀 흘리며 싸워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늑대가 없다는 것이다.

요즈음 늑대들은 동물원이나 산속 깊은 곳에 있으니 상대하기가 불가능하다.

설사 늑대가 있다고 해도 김 과장은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싸울 시간이 없다.

아마도 김 과장은 생존의 메커니즘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10년 정도 지나면 고혈압, 심장병, 당뇨, 불면, 근육통, 만성피로증후군, 과민성대장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김 과장은 성인병 예방을 위해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아야 한다.

늑대를 대신해서 직장동료와 퇴근 후에 테니스를 치거나 검도를 배우며 기합도 지르고 땀도 흘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생사의 결투가 스포츠경기로 승화된 셈이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어 여의치 않으면 눈을 감고 복식호흡을 하며 늑대가 내 앞에서 사라졌다고 상상하는 명상과 마음 수련을 하면 도움이 된다.

건강에 좋은 스트레스(eu-stress)가 있다.

스포츠경기를 앞두거나 해외여행을 가기 전날에도 긴장을 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기분은 좋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노동을 하는 생산직 근로자와 실내근무를 하는 사무직 근로자의 수명을 비교한 연구에서 연령, 흡연, 음주, 소득수준 등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 생산직 근로자의 수명이 사무직 근로자에 비해 더 짧게 나타났다.

상당히 의외의 결과였다.

연구 수행 전 가설은 신체활동이 왕성한 생산직 근로자가 당연히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즉 아무리 신체활동을 많이 하더라도 즐겁게 하지 않으면 나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해 전 원광대 보건행정학과 김종인 교수의 사회 저명인사 직업군 별 사망연령 비교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운동을 많이 한 프로선수들의 수명이 의외로 짧다는 것이다.

운동이나 일이나 즐겁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김석범 MCM 건강의학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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