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울국악회

입력 2004-06-12 15:42:44

지난 7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3동 한 국악 연습실에 맑고 그윽한 대금 가락이 울려 퍼졌다.

10여명의 사람들이 중모리 장단에 맞춰 하나인 듯 당기고 풀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면 전문 국악 연주 단체의 합주 연습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니 초로의 신사와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십대가 가락을 타고 있다.

이들은 일반인들로 구성된 전국 유일의 민간 국악 단체 '예울 국악회' 회원들이다.

1988년 발족한 '예울 국악회'는 16년째 정기 공연을 가지며 우리 소리와 가락을 전파해 왔다.

현재 활동하는 회원은 대구, 칠곡, 경주 지역을 합쳐 120여명. 회원 가운데 절반은 중요 무형 문화제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인 김경애씨의 제자들이고 나머지는 짧게 5년에서 길게는 15년까지 취미로 국악 연주를 해온 아마추어들이다.

초기에는 대금산조제주만을 연주하는 단체였지만 이제는 국악 관현악 오케스트라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는 정재표(49)씨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양 음악에 길들여져서 국악이 얼마나 우리 심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지를 모릅니다.

국악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이 되려면 단체를 조직해서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곳에서는 초등학생부터 60대 노인까지 세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연령층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러나 세대간 갈등이란 먼 나라 이야기.

"어른을 대하는 법이나 몸가짐 등을 배울 수 있어서 아이들 교육에 그만이죠. 어른들도 아이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요즘 유행하는 최신 가요를 따라하기도 합니다.

마치 대학교 동아리 같다고 할까요". (안민균.49)

아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손을 휘휘 내젓는다.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줘서 좋다는 대답과 함께.

"어른들이 계시니까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몸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밖에서도 다른 친구들보다 어른들을 더 잘 챙기고 예의 바르게 돼요". (윤성준.19)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실력이 벽에 부닥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연주 자세나 소리를 내는 법 등에 대한 어른들의 조언이 큰 힘이 됩니다". (설송이.18)

문득 연습실 입구에 큼지막이 붙어 있는 목 조각 간판에 눈길이 향했다.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스승이 알고/ 사흘을 쉬면 청중이 안다'.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구다.

취미로 시작한 일반인들이지만 열정과 노력만큼은 전문 국악인 못지않다.

아파트에 살면서 새벽 2시까지 대금을 불다가 이웃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단다.

산에서도 불다가 시끄럽다고 인근 절의 스님에게 혼나기도 했다고. "열정이 지나쳐서 사고를 친 경우도 있었죠. 지금 군악대에서 복무중인 한 친구는 손가락이 짧아 연주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자 손가락 사이를 손톱깎이로 찢기도 했어요. 다행히 잘 아물긴 했지만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죠". 총무를 맡고 있는 문주석(35)씨의 말이다.

쉰여섯의 나이에 대금을 시작했다는 이학도(60)씨. "틈날 때마다 집에서 연습을 하는 데 나중엔 대금을 들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천장에 줄을 달아 대금을 매달아 놓고 연습하기도 했어요. 하하".

예울 국악회의 또 다른 자랑은 대구.경북에서 유일한 상설 연주단체라는 점이다.

창단 이후 지난해까지 2년마다 정기 연주회를 가져왔고 지난해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축하공연,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축제 등 각종 행사에도 초청을 받았다.

올해부터는 매년 2회씩 정기공연도 가질 계획. 정 회장은 "아마추어지만 지금까지 200회 가까이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다"며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면 기량도 늘고 더욱 연습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예울 국악회는 회원들 사이에 논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은 오는 10월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어떤 곡을 연주할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자주 벌어진다.

국악 연주 단체로서 정통 국악만 연주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국악의 저변확대를 위해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곡들을 다룰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 지난달 가졌던 9회 정기 연주회에서는 '불효자는 웁니다', '비 내리는 고모령' 등 가요를 국악기로 연주하기도 했다.

회원 일부는 친숙한 곡들을 연주하면 쉽게 대중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국악의 대중화가 목표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 한 편에서는 국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면 전통 음악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다양한 내부 토론은 예울 국악회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창단 멤버로 시작해 이제 예울 국악회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고 있는 문주석씨는 "초창기 중.고등학생 회원들이 어느덧 20대 후반에서 30대 가 됐다"며 "회원들 모두가 '국악 전도사'로서 굳건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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