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지키는 사람들

입력 2004-06-05 15:45:21

호주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떠올린다.

일부는 오페라하우스나 시드니올림픽, 또는 영화배우 멜 깁슨이나 니콜 키드먼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호주 대륙에도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가 스며 있다.

1770년, 석탄 운반선을 개조한 악취 나는 '엔디버'호를 타고 호주 대륙의 동부 해안에 도착한 제임스 쿡 선장은 이곳을 '테라 눌리우스'(라틴어로 '아무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땅'이란 뜻)라 이름지었다.

하지만 훗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름이 바뀐 이 대륙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쿡 선장이 호주 땅을 밟았을 무렵 125만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로부터 140여년이 흐른 1911년 조사에서 원주민들의 숫자는 3만1천여명에 불과했다.

질병, 대량 학살, 굶주림 등으로 원주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이른 것이다.

*핍박한 백인 향해 화해 손짓

반조 클라크(1922~2000)가 쓴 '대지를 지키는 사람들'은 호주 원주민이 현대 문명인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욕심도 없이 순수한 삶을 살았던 호주 원주민. 그들의 역사와 삶의 방식,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잃어가고 있는 삶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얼굴 흰 사람들'(백인)과 부족으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으로 불린 반조는 수만년 동안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원주민들의 역사와 삶의 방식, 지혜를 들려준다.

"대지는 우리 영혼의 일부이고, 우리는 대지의 혼의 일부다.

우리는 대지와 분리되어서는 살 수가 없다.

대지로부터 멀어진다면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어 결국 박제된 삶이 되어 버릴 것이다". 스스로가 생명의 원천인 대지를 존중하는 삶을 살았던 반조는 나눔을 실천한 원주민의 삶도 얘기한다.

"아무리 적이라도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상처를 내는 정도로 복수하는 데 그쳤으며, 가뭄이 계속되어 배가 고플지라도 또 다른 배고픈 자를 위해 자신들이 발견한 고구마 덩굴 줄기를 땅에 묻어둘 줄 알았다".

*"인간은 신성한 대지에 속해 있다"

이어 반조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서로 조화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은 하나이며, 인간 모두가 한 가족이다.

모든 인간이 같은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문화는 다르지만 한 가족으로서 같이 웃고 대화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 백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원주민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이 눈앞에서 하나둘 사라져가고, 문명인들의 침입으로 대지가 슬픈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반조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사라져간 것들이 사실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며, 여전히 대지 위에서 다른 형태로 숨쉬고 있음을 굳게 믿었다.

책을 번역한 류시화 시인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삶의 본질과 원칙들로부터 멀어진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을 반조는 일깨우고 있다"며 "우리 모두는 신성한 대지에 속해 있다는 것이 호주 원주민들의 오랜 믿음"이라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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