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방향설정부터 제대로

입력 2004-06-04 08:56:47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언어 습득 장치(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가 있어서 어떤 언어라도 자유롭게 습득할 수 있지만, 특정 언어 습득은 13세 전후로 형성되고 이후에는 이전에 습득한 언어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다고 한다.

캐나다 퀘벡(Quebec)에서 태어나는 학생은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습득해서 구사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서 13세 이후에 이주해온 학생들은 두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가 유창하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국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자녀를 유학 보내는 데 관심을 쏟는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에서 공부하면 최소한 영어 하나라도 잘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야 하는 적절한 시기와 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13세 이후가 아닌 13세 이전에 유학을 가는 경우에 어린 나이이기에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3년 정도 지낸 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그 학생의 실제 영어 구사력, 독해 능력 등은 한국에서 공부한 학생보다 상당히 낮았다.

확인해본 결과 그 학생은 외국인보다는 한국인과 어울렸고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적응을 하지 못했다.

물론 영어권 국가에서 1~2년 정도 생활하다 보면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등 일상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영어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다.

단순한 영어회화가 아니라 수업을 이해하고 수업 내용을 영어로 발표하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L씨(33)는 "한국에서는 거의 문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

영어회화 학원에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미국에서 다시 문법 공부를 한다"고 했다.

다른 상당수 학생들도 한국에서 배우는 전통적인 독해책이나 문법책으로 다시 문법과 영작문, 독해 공부를 한다고 전했다.

이는 유학생활이 영어 학습에 상당한 도움이 되지만 듣기와 일상회화가 아닌 다른 영어실력은 한국에서 더 잘 배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녀의 유학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들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의지나 기대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환상을 가지고 유학길에 오르는 것은 낯선 외국생활에 적응하고 높은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다.

방학 중 단기간의 어학연수도 생각해봄직하다.

당장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영어 학습에 대한 의욕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태어난 내 나라에서 인생을 보내야 하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유학을 보내느냐, 현 교육제도 아래에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느냐 하는 결정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회화만이 영어 실력의 절대 기준이 아니고, 한국의 기존 학습 방법도 영어 학습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임대식(한빛 외국어학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