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골프콩트-부작위에 의한 범죄

입력 2004-06-03 09:10:15

법률용어에 '부작위에 의한 범죄'라는 것이 있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를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를 테면 아기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여야 함에도 아기를 굶기는 행위 같은 것이다.

친구 수경이는 내가 그녀의 남편 상도씨와 함께 골프를 할 때면 내게 푸념을 자주 한다.

"왜 날더러 상도씨를 꼬셨다고 하니? 난 상도씨한테 아무 짓도 안했어. 묵묵히 공만 쳤어".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음색은 사근사근 나긋나긋하다.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내가 보니까 상도씨에게 노리끼리한 눈웃음도 치던데".

"햇빛이 강렬해서 눈을 찡그렸는데 그게 눈웃음으로 보였나 보네".

"샐쭉샐쭉 웃으면서 꼬리를 흔들었잖아".

"상도씨가 배꼽잡는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다 같이 웃었지, 나 혼자만 웃었니?".

"그린피도 상도씨가 내줬지?"

"난 내달라고 안했어. 그냥 가만히 있었어. 저 혼자 눈을 찡긋하더니 카드를 긁더라".

"그게 다 너를 꼬셔보려는 수작인줄 모르니? 내리막 한발도 넘는 퍼팅을 오케이를 주어서 돈도 잃어주고".

"내기도 상도씨가 하자고 했고, 핸디도 상도씨가 알아서 줬고, 난 달라고 안했는데 상도씨가 그린에서 내 공을 집으면서 컨시드를 줬어".

"그렇게 큰 컨시드를 받고도 왜 비슷한 조건에서 상도씨에게 오케이라고 영어 한마디도 안 해주니?"

"그야 남자에게서 구멍에 넣는 재미를 뺏으면 안되니까".

"그럼, 너는 멀리건 받았으면서, 장거리 운전한 사람한테 멀리건 주는 예의는 없니?".

"상도씨가 달라고도 안하고 니들도 가만 있는데 내가 나서서 선심쓰면 니들한테 혼나잖아".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상도씨가 너한테 뭔가 달라고 한 것 같던데…".

"난 가진 것이 없어서 줄 것도 없다고 했어. 줄 것 없어 못 준 내가 죄 지은 거니?"

"절에도 열심히 다니면서 넌 보시라는 것도 모르니? 보살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 가운데 제1의 덕목이 보시이고 보시는 중생을 교화할 때의 행동양식의 하나로 권장되고 있다잖아. 너 말야, 불공도 드리고 불사에 기여도 하면서 극락왕생의 지름길이라는 육보시는 왜 안 하니? 꼬리는 먼저 쳐놓고 있는 줄 알고 달라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하고 시침을 뗀 죄, 이것이 바로 부작위에 의한 범죄야. 바로 능지처참할 죄라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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