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어느 기관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4천6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가'였다.
물신(物神)주의에 빠진 현 세태를 비춰줄 것으로 기대했던 조사기관은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92%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복권 등 행운을 거머쥔다'는 고작 3%, '부모님이 부자여야 한다'는 2%에 불과했다.
조사기관은 "우리나라 대다수 어린이들의 건전한 경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며 결론을 내렸다.
▲과연 그럴까.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중고생에게 던져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학생에게 물으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의식이 손바닥 뒤집듯 변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혹시 초등학생들이 '질문의 의도'를 꿰뚫었거나 아니면 '책에서 가르쳐 준대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정답이기 때문에 동그라미 치는 역(逆)선택(reverse selection)을 하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애어른'들의 행동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성싶다.
▲어쨌든 초등학생이 그래도 정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학습효과' 때문이다.
문제는 이 학습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불과 30년 성장으로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고, 물때만 잘 만나면 누구나 벼락부자가 될 수 있고, 줄만 잘 잡으면 권력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다'는 정답이 머리에 들어올 리 없다.
정답은 교과서에나 있는 것, 생활 행동원칙과는 별개라는 '언행 불일치'를 태연히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데 '월드컵 4강'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주장에 반해 이대로 주저앉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찮다.
우리나라에 진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을 아주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과정'을 경시하고 '결과'만을 좇으면 자부심은 자만심이라는 독(毒)으로 바뀐다.
이런 판국에 '정보화 사회'와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했으니 성실보다는 아이디어가, 도덕보다는 얕은 지식이 더 대접받고 있다.
우리는 정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지방을 넘어야 안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본주의는 부(富)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부를 어떻게 이루었는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 시스템이다.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문지방이다.
엊그제부터 경찰이 교차로와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을 단속한다고 호들갑이다.
이제야 기초질서인 정지선 지키기에 열중하고 있으니 낯이 뜨겁다.
어제 단속에 걸린 위반자들 모두 운전면허시험 때 '정지선 불가침'에 동그라미를 친 사람들이다.
문지방 넘기가 이렇게 어렵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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