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전 모방할 뿐인데..." 서예가 서산 권시환

입력 2004-06-02 08:55:45

'붓 끝이 살아 기운이 생동한다' 는 평을 받고 있는 서예인, 서산 권시환(54).

대구시 중구 봉산동 대구초교 인근 자택 3층 작업실엔 한지와 붓, 먹 냄새로 가득했다.

보이차 향이 옛 토기나 문방사우(文房四友)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어릴 적 그토록 싫어하던 중국 고전과 한자 공부가 평생의 업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가끔 강의를 위한 나들이를 빼곤 왼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붓과 씨름한다.

술 담배 축구 그리고 잠은 '붓질'을 위한 양념일 뿐이다.

서산은 1일부터 8년 만에 일본에서 전시회를 갖고 있다.

'게을러서….'란 그의 말 뒤엔 지난한 수련과 정성을 담지 않은 작품 전시에 대한 경고의 뉘앙스가 풍겼다.

7일까지 도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일본의 대표적 전통파 서예인 가류 무라야마(55)씨의 초청으로 마련됐다.

무라야마씨와의 인연은 지난 97년 대구와 일본 도쿄의 대표작가 각 8명이 양국을 오가며 가진 '정예작가 초대전'에서 시작됐다.

지난해엔 대구U대회를 기념하는 '국제서예전' 이후 서산의 주선으로 대구에서 '무라야마 초대전'을 가졌고, 이번에 답례 형식으로 서산이 초대를 받은 것. 이번 전시회에는 갑골문자를 비롯해 행서 초서 전서 예서 등을 망라해 작품 30여 점을 내놓는다.

다음달 4일에는 제자 11명이 서산의 도쿄행에 함께 나선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안동 권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서산은 어릴 적부터 큰아버지의 서당에 다니며 한자를 배웠다.

서산은 "평생 농사꾼도 축과 지방은 남의 손 빌리지 않는다"며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중학교 2년 때 이모부인 효정 권혁택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배우다 고교 때는 아예 효정 선생의 대구 집에 머물며 5년간 사사했다.

군 제대 뒤 70년대 말부터는 서예의 대가를 찾아 전국을 훑었다.

그렇게 만난 스승이 바로 서울 인사동에 있던 여초 김응현 선생이다.

서산은 "고전에 충실한 철저한 기본수련이 여초 선생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영향"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법고주의'를 따르지 않고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는 것은 '걸음마 없이 날겠다'는 격이라는 것.

서산은 철저한 기본의 수련과 함께 정교한 '붓의 운용기법'을 강조했다.

"진정한 서예인은 붓 털 하나 위에 팔뚝을 올려놓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이제 겨우 고전을 모방하고 섭렵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서산의 작품은 붓의 기운이 퍼져 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는 행.초서에 능통하고, 작품이 붓의 힘을 받아 생동감이 넘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 젊은 서예인들의 경향에 대해 서산은 "겉멋만 들어서는 곤란하다"며 "고행을 하지 않고, 고전도 착실히 공부하지 않으면서 자기만 내세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힘이 닿는 한 당분간 고전 공부에 매달릴 것"이라며 "나이가 더 든 뒤에는 문인화, 특히 사군자에 관심을 가져보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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