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입력 2004-05-31 11:09:18

'홍상수 영화'는 드라마 위주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확실히 낯선 영화다.

주인공의 '쓰잘 데'없는 대사를 롱 테이크로 보여주는데, 무슨 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것도 아니어서 보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홍상수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알 만한' 사람들(주로 대학강사)이 벌이는 허위의식과 위선이고, 또 하나는 섹스다.

그의 영화는 어떻게든 한번 해보려는 남자들과 못 이긴 체 따르는 여자의 이야기다. 수컷과 암컷의 '여관방 냄새나는' 화려한 이중주인 셈이다. '사운드'는 또 왜 그리 적나라한지, 여관방에 같이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키워드'(?)는 '빨아줄까'이다.

선화(성현아)는 7년만에 만난 애인 헌준(김태우)이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틈을 타 소파에서 문호(유지태)의 지퍼를 연다. 마치 힘든 여정을 걸어온 나그네의 육신을 다스리듯, 그렇게 정성껏 '애무한다'. 그리고 둘은 방으로 들어간다.

헌준은 다음날 내내 심통을 부린다. 선화가 짜증스럽게 묻는다. "왜 그러는데". 헌준은 "한 숨도 안 잤단 말이야"라고 고함 지르며 달려간다. 선화의 '외도'를 보면서 밤새 가슴 저렸을 한 남자의 항변. 헌준의 뒷 모습을 보면서 선화는 의외로 맹한 얼굴이다. 그 고통을 알기나 할까. 성현아의 맹한 표정은 연기력 부재인지, 아니면 "그게 뭐 어땠어?"라는 여자의 '뻔뻔함'인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선화는 이 남자의 고통스런 미래다.

헌준과 문호는 어떻게든 여자에게 몸을 담그려는 30대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식당 여종업원에게도 추파를 던지며, 술집 창 너머 길가에 선 여자를 보면서도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그런 족속들이다. 원초적인 것에 충실한 수컷들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확실히 난해하다.

대학 강사인 문호가 술집을 나서자 여학생이 따라 나온다. 여자 제자는 선심쓰듯 "이번 한번 뿐이에요"라며 여인숙으로 들어간다. 문호가 방이 너무 더러워 앉기도 싫다고 불평하자 제자는 "그럼 애무해드릴까요"라며 당돌한 제안을 한다.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는 여인숙 방문 밖에서 서성이다 방문을 차고는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여자들이 외간남자의 '물건'을 입안 가득히 물고 있을 때 남자들은 고통스런 순간을 겪는다.

사랑은 소유이며, 섹스는 점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가 위선적이라면, 여자는 이중적이다. 남자의 가슴을 저미는 흉기의 여자들이다. 그렇다고 팜므 파탈(악녀)도 아니다. "있는 것 알고 달라는데 어쩔 도리가 있어야지"라는 식이다. 생활의 발견일까. 너무나 당연하고 천연덕스럽다.

이 영화에서 정상적인 섹스는 초반에 등장하는 헌준과 선화의 섹스다. 약속 시간에 왜 늦었냐고 힐난하는 헌준에게 선화는 "어제 강간을 당했다"고 대답을 한다. 군대에서 제대한 남자친구에게 끌려가 강제로 당한 것이다.

헌준은 여관방 욕탕에서 그녀를 정성스럽게 씻어준다. 비누를 칠하고,손으로 그 부분을 정성스럽게 닦아준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깨끗해진다"며 섹스를 한다.

그러나 나머지 섹스는 '애무해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왜 이 영화는 정상적인 섹스를 거부할까. 섹스의 체위는 남자의 소유욕의 형태다. 남자가 위에 있고, 여자가 아래에 있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정상'체위라고 이름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항상 '당하는'식 아닐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는 여자가 '쥐고'(주도권?) 있다. 남자는 당하는 쪽이다. 여자는 남자의 태생적 성욕을 자극해 장난감 만지듯, 남자의 물건을 가지고 유희한다.

"너 그렇게 힘들었어? 이리 와. 내가 달래줄게". 나그네의 등짐을 덜어주 듯, 여자들은 그렇게 남자를 어루만진다.

그렇게 보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일수도 있겠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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