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뻗은 철로에 서서, 다가올 미지의 땅을 상상하며 기차를 기다리는 야릇한 기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강의 풍경. 낯선 사람 곁에 앉아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설레임. 뚜렷한 목적지 없이, 별다른 목적없이 그저 여행을 위해 떠나는 기찻간에선 만나는 풍경마다, 사람마다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을까.
◇ 30년전 지구반바퀴 모험 대장정
'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기행'은 30여년 전 저자가 기차를 타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돈 여행기다.
저자는 "기차의 기적소리는 사람을 홀린다.
어떤 경관이든 한치의 흔들림없이 슬그머니 빠져 나가며,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음료수 한 방울 쏟지 않으면서 사람의 기분을 한껏 띄워주는 기차는 거부할 수 없는 공간 그 자체다"라고 기차여행을 찬양하고 있다.
또 "기차를 타면 아무리 지독한 곳이라도 마음이 놓인다.
비행기가 주는 진땀 나는 공포감도 거리가 멀고 장거리 버스의 기름내와 멀미, 자동차 운전자를 괴롭히는 무력감 같은 것이 없지 않은가. 편안한 기차를 타면 목적지마저도 필요치 않다.
창가 자리 하나면 족하다"라며 예찬론은 이어진다.
온갖 낭만과 음모의 배경이 된 오리엔트 특급열차, 탁자마다 생화와 맥주 포도주가 그득한 반 골루 특급열차, 일주일에 한 번 장에 가는 소수민족들로 북새통을 이룬 카이베르고개 완행열차, 노골적으로 팁을 요구하는 테헤란 특급열차 등이 등장한다.
◇ 70년대 亞 추억의 정취 '물씬'
십 수년간 게릴라전으로 열차 맨 끝칸은 무장 호송칸으로 꾸며졌던 옛 버마(미얀마) 열차, 조용하고 깨끗해서 오히려 불안한 일본 열차, 같은 풍경이 며칠씩 계속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도 저자의 몸을 실었던 열차다.
영국 빅토리아 역에서 파리 이탈리아 불가리아 터키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버마 타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일본을 거쳐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대장정이 펼쳐진다.
유약을 덧칠한 용그림이 그려진 목욕 항아리가 있는 타이 기차, 승려를 위해 좌석을 비워놓은 스리랑카 기차, 채식주의 식당차와 육등칸으로 꾸며진 인도 기차 등으로 그 나라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이란 기차의 기도용 돗자리, 말레이시아 기차의 국수 매점, 베트남 기차의 방탄유리, 러시아 기차의 차 끓이는 주전자 '사모바르' 등도 눈길을 끄는 풍경이다.
고압적인 경찰이 검표를 하는 유고슬라비아, 석유로 떼돈을 벌어 마구잡이 공사를 벌이는 테헤란, 폐허가 된 건물과 난민들만 가득한 베트남, 종교와 정치가 관료주의로 찌든 버마, 발코니 달린 예쁜 건물들이 늘어선 파키스탄 페샤와르 등이 70년대 아시아의 정취를 풍기고 있다.
프랑스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폴 써루가 세계적인 기행작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첫 여행기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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