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반세기 산증인 白壽 노교육자 대구에

입력 2004-05-29 10:43:51

대학의 개교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100세의 노교육자가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왔다.

지난 20일 계명대 성서캠퍼스를 찾은 신후식(申厚植.1905년생) 목사.

미국의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 살고 있는 그는 계명대의 개교 반세기를 축하하기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덜레스 공항에서 14시간을 날아서 대구에 왔다.

대한항공 미주 출항 이래 100세의 노승객을 맞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신 목사는 계명대 신일희(申一熙) 총장의 큰 아버지로, 계명대(학교법인 계명기독학원) 설립(1954년)에 참가했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학교 설립이사의 자격으로 기념식장에 자리한 신 목사는 축도(祝禱)를 하며 대학의 발전과 교직원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이에 대해 신일희 총장은 "멀고도 힘든 발걸음을 하셨다"며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에 거듭 감사를 드린다"고 화답했다.

대구 인터불고호텔에 여장을 푼 그는 많은 지인들의 안부를 물으며 빡빡한 일정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모교이자 교장으로 재직했던 계성총동창회 초청 간담회와 당회장을 역임한 내당동 청산교회 방문 설교, 계명대 아담스채플에서 열린 임직식 참석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에 앞서 신태식(申泰植.96) 명예총장을 찾은 신 목사는 허리가 불편해 개교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우를 위로하며 늘 그랬듯이 평온한 눈길로 형제간의 우의를 다졌다.

지난 주말 신 목사는 고향인 청송군 안덕면 복리를 찾았다.

가족의 교회사가 시작된 복동교회를 찾아 기도를 하고, 선대의 묘소도 참배했다.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고향을 다시 찾은 그를 반겨 생가에는 60여명의 친지와 가족들이 모여 고향산나물로 귀향 잔치를 대신했다.

계성학교.신명학교 교장 등 현직에서 모두 은퇴한 지난 1978년, 여러 아들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 신 목사는 워싱턴의 원로목사회나 계성동창회 모임에 가끔씩 나간다.

지금도 하루 3, 4시간씩은 꼭 독서를 할 만큼 옛시절에 대한 기억력도 총명하다는 게 가족들의 얘기.

현재 서울에 있는 딸 명희(55.연세대 교수)씨 집에 머물고 있는 신 목사는 고향과 대구사람들에게 "나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무슨 일이건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도우며, 일생을 교육과 목회에 헌신한 그는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묻자 '마음을 비우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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