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토문화운동을 제안한다

입력 2004-05-26 09:00:51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초기에 직장 단체에 끼어 거길 따라 간 적이 있다.

내키지 않는 점이 없지 않았으나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한 눈을 감기로 하였다.

명색이 국토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지리학자인데 가보지 못한 내 나라 땅을 한 쪽 구석이라도 바라볼 기회를 어찌 지나가게 두겠는가. 변덕스런 사람들이 심술을 부리기로 하면 그 알량한 뱃길이나마 언제 다시 닫힐지 모르는 걸. 가깝고도 멀다더니 참으로 모국 강산이로되 이방이었다.

아침에 뭍으로 가서 낮 동안 줄 서서 구경하고 저녁이면 다시 배에 돌아와 자야 하는 참으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관광이었다.

금강산 관광이라고 할 때, 이런 참담한 심정 외에 내게 지금까지 남은 기억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이미지다.

이름 그대로 역시 아름다운 금강산(Diamond Mountain)의 자연경관이 그 하나라면, 그 곳의 취락과 전답, 제방, 도로 등 황폐한 문화경관이 나머지 하나였다.

하늘이 준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운데 비해, 사람이 만든 것은 초라하고 강퍅하였다.

그 대조가 너무나 강렬하여 도저히 하나의 통합된 경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옥죄는 분위기가 만들어 내는 불안감에 더하여 죄지은 심정이 되어 사흘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편치 못한 마음으로 강산을 돌아다니고 있다.

두어해 전부터 국토의 구석구석을 답사하고 다니는 데, 이 쪽에서도 사람이 만든 것이 자연에 못 미치기는 북녘과 다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것을 어찌 하느님의 창조물에 비길까마는, 보는 눈도 역시 사람의 것이다.

그 땅에 속한 이가 애써 만든 것이니, 웬만큼만 어울리면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이 이치다.

그런데 남과 북에서 사람이 만든 것들은 자연에 어울리지 못한 채 마음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의 눈과 마음에조차 말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그것이 주는 것들을 이용하고 개조하면서 살아간다.

즉, 사람들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그 곳에 주어진 자연에 인공을 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연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생활의 양식은 그 결과를 다시 자연에 남긴다.

이렇게 자연에 반영된 인간 활동의 결과는 실은 인문화한 자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다음 세대의 삶의 조건이 된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쌓여 가다 보면, 땅위에 하나의 문화가 형성된다.

그것을 국토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국토문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결과이자 조건이기도 하다.

풍요로운 삶은 국토에 풍성한 문화를 남긴다.

또한 풍성한 국토에서는 풍요로운 삶이 이어진다.

역으로 황폐한 국토에서는 메마른 삶이, 더러운 국토에서는 퇴폐한 삶이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물론 개천에 용 나고, 명승지에서 망나니가 나올 수는 있다.

인간이 가진 가치관과 의지, 그리고 그에 기초한 창의적 적응은 환경론(環境論)의 기계적인 적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넓고 긴 안목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환경론은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북한의 황폐한 문화경관은 북한 주민들의 메마른 삶을 반영한다.

초라하고 강퍅한 국토의 문화가 빈한하고 찌든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고, 또 그런 고단한 삶을 예고한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국토문화가 부조화하고 퇴폐한 것은 우리네 삶이 마구잡이요 천박함을 드러낸 것이다.

강산이 온통 '먹자 판'이요 '놀자 판'인 것은 못 먹고 못 산 과거의 한풀이라고 하자. 역사가 오랜 지방 고도에 고층아파트를 세우고, 들판이건 주택가건 마구 들어서는 모텔들은 무엇인가? 썩은 물과 숨 막히는 공기, 파헤쳐진 산허리, 개천가 나무 위에서 온 들판으로 널브러진 비닐, 제멋대로 내지르는 스카이라인과 시끄럽고 막힌 인도, 그리고 벌거벗고 나서는 원색의 간판들….

다 같이 돌보지 않아서 황폐하였지만, 북한의 국토문화가 가진 것이 없어서 피폐했다면, 남한의 그것은 가진 것이 분에 넘쳐서 타락하였다.

이런 국토문화에서 아이들이 밝고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자라날 수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인문의 고상함에 감동하면서, 정겹고 여유롭고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속 너른 어른들로 성숙해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이 무표정하고, 공격적이고, 뻔뻔스럽다고들 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경박하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천박한 우리 도시의 거리를 떠 올린다.

공교육이 문제고, 정치가 신뢰를 잃고, 사회가 무섭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거꾸로 아름다운 풍경, 격조 높은 삶터를 그리기도 한다.

금강산만이 아니다.

묘향산, 대동강이라고 다르지 않을 게다.

북한산, 지리산 자락과 낙동강변이 또한 같다.

모양새와 강도가 다르지만 아름다운 자연에 추한 모습을 덧씌우고 있기는 남북한이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생활양식이 먼저인지 국토환경이 먼저인지 따질 겨를이 없다.

국토문화가 무너져 내리면 우리네 삶이 또한 무너져 내린다.

자연 따라 마음까지 높푸른 5월, 갓 태어난 손녀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요즘 '국토문화운동'에 나설 궁리를 하고 있다.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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