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리어왕'을 보았다.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매우 인상적인 야외공연이었다.
그 날은 작품 자체에서 나오는 내적 효과의 측면이 아니라 '비'라는 의외의 요소가 만들어낸 외적 효과의 측면이 강했다.
비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가운데 극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급기야 억수처럼 쏟아졌지만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극장 스태프들도 비에 동요하지 않은 채 관객들에게 일회용 비옷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저녁의 극장, 그것도 야외극장 앞의 풍경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비를 피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순서를 기다려 비옷을 받아 입고 극장에 들어가 객석에 앉았다.
무대는 이미 비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객석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연출자가 관객에게 악천후 속에서도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말을 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배우나 관객이나 모두 힘든 공연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공연을 강행하겠다는 연출가의 강한 의지와 태도는 공연을 보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냈을 관객들의 호응을 적절히 이끌어 냈다.
결국, 막은 올랐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물론 공연 도중에 비로 인한 누전 때문에 작은 폭발이 일어나 객석이 잠시 소란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맡은 바 역을 다 하였다.
극장에는 폭우와 함께 관객의 몸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가 서서히 퍼져갔다.
그 쌀쌀함은 '리어왕'의 대사와 함께 극장 전체를 휘감았지만 맨몸으로 비를 맞고 있던 배우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보고 들으며 느낀 풍경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최악의 환경에서 이루어진 공연이었지만 열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배우와 관객으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공연이 끝날 때쯤, 관객도 어느새 그 열정적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안희철(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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