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셔봅시다.

입력 2004-05-20 15:21:37

김치말이? 김밥처럼 김에 김치, 밥 넣고 돌돌 만다는 얘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미식가를 자처하기는 힘들 것 같다.

말기는 마는데 김칫국물에 밥을 마니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김치말이가 요즘 일부 냉면집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시원한 물냉면에 밥을 한덩이 넣어 졸깃졸깃한 냉면은 물론 밥도 말아 먹을 수 있어 별미로 찾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원조 김치말이를 약간 변형시킨 음식일 뿐이다.

대구시 남구 봉덕2동에서 2대째 북한음식 전문집 '대동강'을 운영하고 있는 석정희(52)씨로부터 북한 평안도 음식인 김치말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원래 김치말이는 이북에서 한겨울에 먹던 밤참이에요. 여기서는 일하다가 중참을 먹지만 북한에서는 꼭 밤참을 먹지요".

기나긴 겨울밤 자정무렵이 되면 어른들은 김치말이를 만들어 잠이 든 아이들까지 깨워 쏙 꺼진 배를 채우게 했다고 한다.

작고 단단한 토종 무로 담근 동치미 국물이 한창 맛있을 때. 살얼음이 낀 동치미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날도 추운데 속까지 차갑게 만드는 김치말이를 먹곤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었던 기억. 이북 출신인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김치말이를 어릴 때부터 먹다보니 그 맛을 잊지 못해 석씨는 요즘도 김치말이를 즐겨 해먹는다고 했다.

"냉면은 동치미 국물을 적게 넣고 고기 육수를 많이 넣는데 김치말이는 동치미 국물에 고기 육수는 적게 넣어 만듭니다.

경상도에서는 '갱시기'라고 김치, 콩나물, 찬밥을 넣고 끓여 먹을 생각은 해도 찬 음식 그대로 먹을 생각은 못 했으니 아무래도 북한 음식문화가 한 수 위인 것 같아요".

1.4 후퇴때 대구로 내려와 냉면집을 차린지 40년째 되는 평양 출신인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전수받은 그녀는 김치말이가 바쁜 현대생활에도 딱 맞는 음식이라고 했다.

초스피드로 만들어 맛을 즐길 수 있는 건강식이기 때문이다.

국수와 밥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으니 입맛이 제각각인 가족들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김치말이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다진 소고기를 미리 볶아놨다가 국물째 한 숟가락 떠넣고 밥 한덩이, 국수나 냉면 사리, 채썰어 참기름.깨소금으로 무친 배추김치, 동치미 무를 썰어넣고 국물을 부어 먹으면 되니까요".

겨울에 담근 동치미가 이미 바닥이 났다면 요즘 담그기 좋은 열무김치로 대신해도 된다.

"지금 열무는 부드러워 김치를 담근다고 손으로 많이 만지면 물러져 맛이 없어요".

그녀는 풀물을 끓일 때 소금으로 미리 간을 맞춰두면 김치를 담그면서 맛을 본다고 자꾸 손을 댈 필요가 없이 한번으로 간보기를 끝낼 수 있다고 했다.

소금은 천일염을 써야 열무가 안 무르고 시원한 맛이 난다.

"양파, 대파를 통째로 밑에 깔고 다진 마늘, 풋고추, 붉은 고추를 열무와 섞어 넣고 풀물을 끓인 것을 부으면 됩니다.

설탕을 넣을 필요없이 양파를 많이 넣으면 단맛이 나고 김치가 빨리 익게 하려면 더운 풀물을 붓거나 파를 많이 넣으면 됩니다".

소고기는 기름에 볶지 말고 물에 삶듯이 익혀 다진 마늘, 간장으로 짭짤하게 간해 국물이 넉넉하도록 만드는 것이 요령.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국 끓일 때 한 숟가락씩 떠넣으면 바로 고깃국이 된다.

"냉면 사리나 국수는 마지막 그릇에 담기 직전에 삶아야 면이 퍼지지 않습니다.

센불에 빨리 삶아 건져 찬물에서 양손으로 비벼 싹싹 씻으면 면발이 더 졸깃졸깃해집니다".

그녀는 김치말이에는 참기름을 넉넉히 넣어야 맛이 더 좋아진다고 했다.

냉장고에 넣어 시원해진 열무김치 국물에 말아먹는 김치말이. 이번 주말 가정에서 즐기는 별미로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 집에서 만들어 보세요

1.다진 소고기에 물을 넉넉히 붓고 익혀 다진 마늘, 간장으로 간을 한다.

2.배추김치를 채썰어 참기름을 넉넉히 붓고 깨소금을 넣어 무친다.

3.냉면 사리는 먹기 직전에 센불에 삶아 찬물에 비벼 씻는다.

4.그릇에 밥 한덩이, 냉면 사리나 국수, 양념한 김치, 열무김치, 소고기와 약간의 육수, 계란 지단 등 고명을 얹고 열무김치 국물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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