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부부의 날

입력 2004-05-20 12:57:23

21일은 올해 처음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부부의 날'이다.

하지만 달력에는 아무런 표시가 돼있지 않아 이날을 잘 모르는 이들도 적잖다.

지난해 12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부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에 관한 청원'이 뒤늦게 통과되는 바람에 사전에 제작되는 달력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공휴일만 아닐 뿐 공식 기념일인 부부의 날을 21일로 정한 이유는 둘(2)이 하나(1)가 돼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뜻에서다.

올해 부부의 날이 유난히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사실 이날은 이미 10년전부터 일부 지역에서 기념되어 왔다.

부부의 날 위원회 사무총장 권재도 목사는 지난 95년부터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부부의 날 기념행사를 열고 국회를 드나들며 기념일 제정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에 부부문화가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식없이 부부 둘이서 무슨 재미로 사나?" 불임 등으로 자녀가 없는 부부들을 보며 이렇게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의 부부문화가 얼마나 삭막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취미.여가생활을 함께 보내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대다수 부부들은 각자 따로 노는데(?) 더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직장일로 스트레스 쌓인다는 핑계로 밤마다 술자리를 가지며 집은 잠자는 하숙집 정도로 여기는 남편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가 어려워져도 남편들의 술자리는 좀처럼 주는 것 같지 않다.

얇아진 지갑 사정을 고려해 요즘은 단돈 1천원으로 막걸리 한사발과 공짜 안주까지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인 술집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보다는 친구나 주변 아줌마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데 더 익숙해져 있다.

동창회 등 여러 가족이 나들이를 가면 남자, 여자 따로 자리를 잡기 십상이다.

아내가 자신의 흉을 보는 줄 뻔히 알면서도 하루라도 스트레스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모른 척하는 남편들. 젊을 때부터 부부가 함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연습이 돼있지 않으니 늙어서도 부부 관계가 살가울 리 만무하다.

부부의 날 위원회는 부부의 날에 장미꽃 한송이와 편지로 연애시절의 따뜻한 마음을 되살려보라고 권한다.

그리 거창한 선물이 필요할까. 바쁘고 여유없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부부 둘만의 호젓한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 자체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다정히 손을 잡고 추억이 담긴 곳을 찾아 연애시절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처음엔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따로 날을 잡을 것 없이 매달 21일을 부부 둘이 하나가 되는 날로 약속하는 방법도 좋을 듯싶다.

남녀간에 불붙은 사랑의 에너지가 유지되는 기간은 고작 18~30개월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부부상담 전문가들은 부부들이 선택한 사랑을 가꾸고 만들어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가치관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 부부의 삶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김영수차장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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