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용천...그 이후

입력 2004-05-20 12:57:23

용천 역 열차 폭발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재산과 인명 피해 모두 세계 열차사고 사상 최대, 최악이라는 이 사고를 맞아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보여준 적극적인 지원의 모습은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 지원 사업에 난색을 표했던 보수적인 시민들과 단체들까지 한 마음 한뜻으로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역시 피는 이데올로기보다 더 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념적인 대치상황 속에서도 역경에 처한 형제를 도울 생각이 있음은 사실 그 사회가 지닌 미래의 비전에 다름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이 용천 주민을 위한 글짓기 대회와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하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가 그 동안 참 많이 성숙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짓기 시간이면 '때려잡자 김일성'류의 글을 쓰고 미술 시간이면 뿔이 돋은 붉은 색의 도깨비 위에 괴뢰라는 말을 기꺼이 적었던 기성세대들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전환은 사실 신비하기까지 하다.

물론 사회의 한쪽에서는 여전히 난망한 의견도 존재한다.

용천 사고야 인도적인 견지에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지만 무조건적인 북한 퍼주기 식의 지원은 곤란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어떤 보도에서는 지원한 구호물자를 용천 주민들이 활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구호품들을 이재민들이 제대로 수령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지원을 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관심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궁금증은 사실 그 동안의 북한사회가 지극히 폐쇄적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일이다.

만에 하나 용천의 주민들이 전 세계 시민들이 보낸 구호품들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하자. 조난에 빠진 인민을 구휼할 의사가 없는 정권은 정권이 아니다.

구호품을 군사 비축용이나 지배층의 분배용으로 쓴다면 그 또한 지탱될 수 없는 정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남쪽의 생산품을 주민에게 나눠주지 못하고 지배층이 쉬쉬 하며 써야하는 상황이라면 그 정권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철통같던 박정희 정권의 붕괴나 구 소련의 붕괴 또한 이런 지배층의 정신적, 도덕적 붕괴 과정을 겪은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인요한 박사(45)의 견해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1895년부터 5대째 우리나라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의 가문은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열렬한 애국심에 불타는 그 어느 한국인 못지 않게 한국 사랑을 실천한 가문이다.

북한 돕기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그는 미국인이 북한을 돕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북한이 너무나 못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명쾌하게 답변한다.

남쪽은 그만큼 잘 살게 되어 도울 명분이 약해졌다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북한의 의료현실은 충격적이다.

면화를 키워 직접 붕대를 만들고, 전력이 없어 수술시 창 밖에서 거울을 반사시켜 수술실 안에서 그 빛을 받아 수술을 한다 고 한다.

X-ray 필름이 없어 의사가 X선을 몸에 쐬어 가며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극히 순박하고 남쪽 사람들이 잃어버린 순수한 모습과 풍속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퍼주기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그는 비판적이다.

잘 사는 형이 궁핍한 동생을 도움은 당연지사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우리의 냄비근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지금은 언론과 국민 모두 나서서 용천 돕기에 나서지만 몇 달 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잠잠해질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마음을 다해 돕자는 것이다.

바로 그런 마음만이 우리 세대 안에 우리의 힘으로 통일의 순간을 만날 수 있는 최선의 준비가 될 것이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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