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언어 폭력

입력 2004-05-19 15:39:32

우리는 날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밤새 안녕'식의 세상에 살고 있다.

영상매체나 현실을 통해 보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 웬만큼 난폭한 사건은 충격도 주지 못할 지경이다.

'언어 폭력'도 마찬가지다.

문학 역시 그런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느낌이다.

언어 미학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온 시마저 언어 순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치닫기도 한다.

시가 속도와 폭력의 시대에 격정을 삭이는 청정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되레 더욱 강한 자극제 역할은 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시에는 언어가 혹사되고 문법과 구조가 전복되는가 하면, 비어.속어.욕설들이 넘쳐난다.

▲한 여성 시인은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통해 도발적이고 엽기적인 시어들을 구사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서에서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오한.발열.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중략〉…무엇보다 이 시는 똥 핥는 개처럼 당신을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쓰기까지 했다.

실제 언어폭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근래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수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라 충격을 안겨줬다.

검찰은 요즘 내부적으로 수사의 적법절차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수사 관행에 언어 폭력이 심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어떤 검사는 '우리가 고객 상담하듯이 조사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고 하나 영향력이 컸던 지도층 인사들이 반말이나 욕설, 인격 모독 등 언어 폭력은 견디기 어려웠을 게다.

▲더구나 명색이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편을 갈라 서로 저주를 퍼붓는 사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건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기다리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풍토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본들 삶의 질이 높아질 턱이 없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평상심 찾기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각박하고 살벌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상생하려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성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

▲시인들의 언어가 폭력으로 나가면서 나중에는 그 자체를 비웃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같은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회의 어둠에 그대로 휘말려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이, 우리 시가 앞으로 과연 어떤 길을 걸을 것이며, 행여 길을 잃지나 않을는지 우려된다.

아무튼 지금은 아름다운 언어와 그 정서가 그리운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모두가 언어 순화에 힘써야겠지만, 특히 시인들은 그 고독한 파수꾼의 자리를 지켜야 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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