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을 살아가는 타이완(臺灣) 사람들은 틀림없이 1990년대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 직선을 추진한 이후 줄곧 흔들림없는 민주화 과정을 거쳐오다 뜻밖에 이번 총통 선거에서 매우 심각한 도전에 부딪쳤고, 그 직접적 도화선이 선거 전날 발생한 '정.부(正.副)총통 총격사건'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의심스런 사건(疑案)'으로 여겨지는 데는 이를 믿거나 회의적으로 보는 유권자들의 수적 격차가 크게 좁혀진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과 타이완은 모두 민주화 유형에서 '동아시아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속하면서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룬 본보기이다.
역사는 두 나라에 서로 비슷한 운명을 건네주었다.
양국은 모두 2차 대전후 분단국가였으나 처지가 상반되어 한국은 '통일', 타이완은 '독립'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대통령의 직접선거로 이른바 "사탕수수는 거꾸로 먹을 수록 달다(倒吃甘)", 즉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데 비해 타이완은 오히려 총통 선거 격화에 따라 마치 악기 연주 중 잘못된 소리가 나타나 점차 귀를 찢는 변조 선율이 되듯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 모두는 타이완 사람들의 국가에 대한 정체성과 관련있는지도 모른다.
2004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 총통은 '타이완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타이완의 민족 스펙트럼 가운데선 가장 먼저 타이완으로 건너온 민난사람들(南: 福建省 출신)이 가장 많다.
이들은 '원래 고향'인 중국대륙에 대한 감정이 상대적으로 가장 옅은데다 더욱이 1945년 국민당이 일본으로부터 타이완 통치권을 돌려받은 후 발생한 '2.28사건(1947년 2월 28일 장졔스 정부가 타이완 현지인 2만여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한 사건)'에서 지금껏 피해자 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타이완 민중들(민난사람들이 가장 많음)이 대량학살됐다.
이후 통치상 필요에 따라 적지않은 민난사람들을 통치 엘리트 계층에 진입시켰다.
그러나 역사의 그늘은 이미 민난사람들에게 '외성인(外省人: 1945년 이후 타이완으로 온 본토인)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버렸다.
리덩후이 전 총통은 2000년 퇴임 후 국민당을 탈당, 따로 대련당(臺聯黨)을 조직하여 민진당과 각축하는 가운데 국민당 최고 통치계층 내에서 이같은 '집안싸움'이 벌어졌고, 그 결과 국민당(國民黨) 주석 롄잔(連戰)과 국민당에서 분열되어 나온 친민당(親民黨) 주석 쑹추위(宋楚瑜)는 개인적 은원(恩怨)관계 때문에도, 또 자신들의 주요 표밭을 장악하기 위해서도, 모두 '통일편향' 노선을 택했다.
이런 상황은 천수이볜으로 하여금 더욱 '타이완의 정체성(正體性)'쪽으로 기울게 했으며, 운신의 폭을 넓혀주었다.
마치 '이공투방(以公投: 공적인 것으로써 서로 뭉친다) 대선'식의 전략으로서 국민당과 친민당에 반대도, 찬성도 아닌 국민들을 난감하게 하였다.
대선이 겨우 2만9천여표 차이로 승부하게 되면서 만약 또 '정.부총통 총격사건'을 음모론이 가득한 사안으로 만든다면 이는 타이완의 민주화 위기가 될 것이며, 그 위기감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3.20 선거에서 민진당은 승리했고 곧 축하행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국민당과 친민당 진영은 잇따른 가두시위와 선거무효 사법소송으로 당선무효 투쟁을 벌였고, 타이완 사회에 잠재돼 있었던 내성(內省: 타이완 출신).외성(外省: 본토 출신) 집단간의 갈등, 중국 통일과 타이완 독립간의 대립은 수시로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타이완 민주화의 이정표인 2004 총통 취임 축하행사는 오히려 두꺼운 방탄유리 경호,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야당 등 이중의 난처함으로 인해 타이완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같은 현 상황은 지금까지 줄곧 '타이완의 기적'으로 여겨졌던 경제적 연대감마저 방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적어도 50만 명 이상의 타이완 사업가들이 중국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외국사업가도, 중국 본토기업의 '제3자' 처지도 아니어서 정치적으로 합당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거대해진 중국경제가 대규모 자금을 흡수하면서 타이완과 중국의 같은 문자, 같은 민족이라는 이점은 지금까지 아무런 경제적인 편승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양안(兩岸)의 삼통(三通:通郵,通商,通航) 문제 등에 대해 타이완 기업들은 현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정책을 갈망하고 있다.
타이완이 21세기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관건은 2000년과 2004년 두 차례 총통선거 중에 터져나온 문제들을 해결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정치의 민주화 과정은 정치가들에 의한 출신집단간의 오랜 갈등, 즉 '타이완化 토템'에 대한 강한 정치적 관심이 경제정책에 대한 판단을 할 여지마저 제압해버렸다.
타이완은 순리적으로 이 좁은 두 병목(2000, 2004년 대선에서 불거진 문제점들)을 잘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향후 타이완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고 싶은데, 과연 시간이 이곳 타이완에 머물러 줄 것인지!차이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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