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2일 오전 11시55분.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가운데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전격 통과됐다.
이 시각 경남 창원 ㈜로템 공장을 견학중이던 노 대통령은 탄핵 소식을 접한 뒤 "오늘 저녁까지는 괜찮다"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차질없이 소화했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귀경한 노 대통령은 곧바로 국무위원 간담회를 갖고,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며 향후 활동범위를 스스로 규정했다.
이후 관저 칩거에 들어간 노 대통령은 학습에 초점을 맞춘 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노 대통령이 평소 '유일한 취미는 독서'라고 밝혀온 것처럼 역사, 인물, 경제 관련 서적 탐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칼의 노래',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마거릿 대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기술강국 이만불 시대', '동아시아 경제변화와 국가의 역할전환' 등이 세상을 잠시 등진 노 대통령의 벗이었다.
책과 더불어 노 대통령은 직무 정지에 따른 공허함을 토론으로 채워갔다. 정치, 경제, 안보 전문가 20여명을 만났으며, 문화, 출판분야 인사들도 초청해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특히 몇몇의 경제학자들과는 휴식없이 2-3시간 이상 계속되는 마라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토론에서는 경제학 이론부터 기술혁신, 일자리 창출 등 구체적 현안까지 모든 것이 망라됐다고 한다.
하지만 독서와 토론이 노 대통령의 갈증을 채워주진 못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에서 "(탄핵) 마법이 풀려야 한다"는 '안타까운'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외부로 비쳐지는 처신 하나하나에는 극도의 신중을 기해야 했다. 4.15 총선 등 정치권이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과의 '만남'이 좌절된 게 대표적인 예이다. 충무공 관련 서적을 접한 노 대통령은 충무공의 전적지를 여행하길 희망했으나, 총선을 앞둔 현실적 여건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무산됐다고 한다.
탄핵 이후 처음 이뤄진 봄 나들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광릉수목원 휴장일을 이용해 4월10일 초록을 찾긴 했으나, 일반인이 겪는 '교통체증'의 불편을 모처럼 느껴야 했다.
청와대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노 대통령의 지난 64일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탄핵기간은 노 대통령에게 역사를 성찰하고 자아를 재충전하며 국정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학습의 시간이었다".
5월14일 오전, 노 대통령은 2004년의 봄을 뒤늦게 되찾았다. 그동안 북악산 등반으로 다졌던 몸, 독서와 토론으로 다듬없던 머리와 마음이 국정에 어떻게 반영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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