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사설-'서희'보다 '강감찬'이 낫다

입력 2004-05-14 09:32:36

북방민족 거란이 3차에 걸쳐 고려를 침공했다.

993년 1차, 1010년 2차, 1018년 3차 등 잇따라 대규모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대규모 침공 이외에도 무시로 소규모 군대를 동원, 고려를 침공했다.

계속될 것 같았던 거란의 침공은 1018년 소배압의 3차 침공 후 끝이 났다.

1차, 2차 침공과 소규모 침공에 잇따라 실패했지만 공격태세를 늦추지 않던 거란이었다.

거란의 태도는 왜 변했을까. 여기서 거란의 80만 대군(1차 침입)을 돌려세운 서희의 담판보다 10만 거란군(3차 침입)을 물리친 강감찬의 20만 군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란이 3차 침공 후 공격을 중단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고려가 거란과 화친하고 연호를 사용했던 것도 이유다.

그러나 절대적 이유는 못된다.

양국간 국교 정상화와 거란 연호 사용은 양국 간 3차 전쟁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난 후였다.

게다가 고려는 이미 1차 침입 후 송나라 연호 대신 거란의 연호 '통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수 차례 침공을 받았다.

학자들이 후학을 가르칠 때 80만 거란대군을 돌려세운 서희의 담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흔히 본다.

지식인들은 종종 서희의 뛰어난 언변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대군에 맞선 약소국의 지혜는 높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매몰돼서는 안된다.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쳤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서희의 담판 이후에도 거란의 침입이 계속됐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슬기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지만 위기자체를 없앨 수 없음을 알려준다.

더욱 큰 문제는 개인의 지혜에 대한 찬양과 함몰이다.

이는 다른 대책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전쟁을 거의 운에 맡기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적이 칼자루를 쥐고있고, 이쪽의 지혜가 먹혀들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

강감찬은 거란의 3차 침입 당시 압록강 근처 홍화진에서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아 적을 무찔렀다.

매복공격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거란의 침공의지를 꺾은 전투는 귀주벌판의 대첩(1019)이었다.

고려의 매복공격과 농성전술에 실패를 거듭한 거란군은 기병전투에 유리한 벌판으로 나아갔다.

고려군은 거란군을 따라 벌판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대승했다.

살아남은 적은 겨우 수천이었다.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전투에서조차 패한 거란은 고려침공을 단념했다

주목할 것은 1차, 2차, 3차에 걸친 거란의 침입 당시 거란과 고려의 군사력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1,2차 전쟁에서 고려군은 수적(군사력)으로 열세였다.

그러나 3차 전쟁의 양상은 달랐다.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은 10만, 강감찬과 강민첨이 이끄는 고려군은 20만이었다.

지혜를 바탕으로 한 담판이나 농성.매복공격이 아니라 압도적 군사력으로 적을 물리친 것이다.

우리나라 집권층은 흔히 이민족의 침입과 관련 의병활약.매복공격.담판.적은 병력으로 대군격파 등을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찬양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찬양이 이런 식의 전쟁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이런 식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훈련받지 못한 부녀자와 어린이, 병든 노인들까지 전쟁에 나가 죽는다.

굶주림과 추위 공포에 떨며 몇 달간 농성을 벌여야 한다.

적의 결단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담판을 벌이기도 한다.

집권층은 백성들의 처절한 항전을 칭찬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대책 없는 칭찬은 미리 대비하지 못한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희의 뛰어난 화술보다 강감찬의 20만 대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신문은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참고자료: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이현희). 인물/난/미술/서책으로 읽는 한국사(정유민.인물세계사(서양편).인물 한국사.강감찬 장군(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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