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14일 탄핵심판 선고가 예정된 만큼
지난 3월12일부터 직무가 정지됐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날을 계기로 어떤 식
으로든 지난 63일간의 관저 칩거생활을 끝내게 됐다.
노 대통령의 지난 2개월여를 돌이켜보면 학습에 초점을 맞춘 정적인 생활로 요
약될 수 있다. 독서와 산책, 주말 등산 등이 '칩거 생활'의 몇 안되는 벗이었다는
게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의 설명이다.
지난 2개월여간 '칼의 노래', '마거릿 대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이
제는 지역이다' 등을 비롯해 참모들이 추천한 엄청난 양의 책을 정독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동안 '토론 공화국' '다이내믹 코리아' 등을 지향하며 역동적으로 일
정을 소화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이 숨막히고 무미건조한 하루하루을
보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표정속에는 유폐 아닌 유폐, 연금 아닌 연금으로 갇혀버린 대통
령의 안타까운 봄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윤 대변인이 노 대통령의 근황을 담아
언론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갑갑한 청와대를 벗어나 외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3차례
에 불과하다. 4월10일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광릉수목원을 찾아 '잃어버린 봄'
을 피상적으로 느낀게 첫 외출이다.
또한 4월11일 지척에 위치한 총리공관에서 가진 고 건(高 建) 대통령 권한대행,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김우식(金雨植) 청와대 비서실
장과의 만찬, 4.15 총선 당일 한표 행사를 위해 서울농학교를 찾은 게 그나마 짧았
던 바깥 나들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해방감을 만끽하듯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총리공관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많이 마신데 이어 노래 몇곡을 연달아 불러 참석자들로부터 박
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종전과 달리 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국무위원이나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도 최대한
자제했다.
밀린 보고서및 자료 탐독, 참모진과의 토론으로 국정에 대한 열정을 해소하려
했으나, 노 대통령의 '끼'를 발산하기에는 여건이 허락지 않았다. 눈과 귀는 열려있
었으나 입은 닫아야 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직무행위와는 관계없는, 규모
있는 토론회를 여러차례 가질 계획이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웠
던 지난 2개월을 회고했다.
다만 문정인(文正仁) 연세대 교수 등과의 이라크 파병문제 토론, 정부혁신.지방
분권위 민간위원들과의 혁신논의, 김대환(金大煥) 노동장관 등과의 노사문제 토론
등을 통해 건조한 봄날의 갈증을 해소하며 국정운영의 '감'을 잃지 않으려 한 것으
로 알려졌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던 탄핵 1개월과는 달리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의 움직임은
좀더 활발해졌다. 열린우리당의 총선승리가 노 대통령에게 '정치적 해금'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총선 당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과 오찬을 시작으로 5월5일 열린우리
당 지도부와의 만찬으로 이어진 소위 '식사정치'를 통해 노 대통령은 헌재의 최종
결정 이후를 준비했다.
"총선이 끝나고 나면 모든 혼란과 갈등이 극복되고 새정치의 희망을 뚜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노 대통령을 서두르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4월11일 출입기자들과의 북악
산 등반에서 밝힌 노 대통령의 바람을 가시화하기 위한 수순밟기로도 해석되는 행보
인 셈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잃어버린 2004년의 봄을 뒤늦게 찾을 수 있을지 노
대통령은 14일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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