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가 삶을 좌우한다

입력 2004-05-11 15:57:58

개인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능과 성격, 행동은 자라난 환경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일까, 아니면 타고나는 것일까. 20세기 중반 행동주의 심리학이 등장한 이후, 아직까지 인간의 행동특성은 환경에 의해 형성되고 자녀의 성격이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생각이 상당히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유태인 대량학살에 나섰던 독일 나치즘이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잔혹상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빚어지는 인종우월주의자들의 살육과 폭력을 생각하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평등하다'는 주장이 왠지 도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결과들은 개인의 성격과 지능 등에 유전자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학이 밝혀낸 유전자의 영향력을 정리해 본다.

◇유전자의 '힘'='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내향성' '적대성-친화성' '정서안정성' 등의 독립된 주요 특성으로 나누어지는 성격은 유전적 영향이 40%를 차지하고, 가정환경은 10% 정도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0%는 질병이나 친구 등 개인적 특수 환경이 차지한다.

범죄성향도 X염색체에 있는 MAOA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MAOA 유전자는 활동이 높은 타입과 낮은 타입이 있는데,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들은 공격성이 높다는 것. MAOA 활동이 높은 유전자형은 어릴 때 학대를 받고 자라더라도 나중에 성격장애나 폭력성을 거의 보이지 않지만, 활동이 낮은 유전자형은 커서 폭력범이 될 확률이 매우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신호를 받는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D4DR 유전자는 '모험유전자'로 불린다.

D4DR은 민감도가 높은 단형유전자와 민감도가 낮은 장형유전자 2종류가 있다.

장형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좀 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모험을 즐기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하면 바람을 피우거나 알코올중독, 담배중독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17번 염색체에 있는 세로토닌 운반체(5-HTT) 유전자를 억제하는 DNA의 길이가 짧은 사람은 근심걱정을 많이 하고,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성격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면 지능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일란성 쌍둥이들의 지능 상관계수는 86%로 동일인이 두 번 테스트를 했을 때 나타나는 87%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란성 쌍둥이의 상관계수는 55%, 형제는 47%, 부모 자식 사이는 40%다.

일란성 쌍둥이는 전혀 다른 환경에 자랐더라도 지능의 상관계수는 76%나 됐다.

지능은 가정환경보다 유전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막강해지는 유전자=쌍둥이를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시절에는 가정환경이 지능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이가 들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지능에 관련된 여러 유전자들이 영향을 발현하는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성장할수록 내재한 유전자들이 점차 발현되면서 환경의 영향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학자들은 지능이 한 두 개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매우 많은 유전자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지능 유전자 발굴 작업에 나서고 있다.

학습과 기억에 영향을 주는 1GF2R 유전자와 글자의 순서를 뒤바꿔 읽거나 거꾸로 읽는 난독증 관련 유전자가 있는 6번 염색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치매처럼 인지능력 저하와 관련된 APOE 유전자는 19번 염색체에 있다.

◇그래도 환경은 중요하다=입양아들은 비록 입양부모보다 친부모의 지능을 더 많이 닮아가지만, 친부모 밑에서 커온 친형제들보다는 대체로 지능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입양가정의 높은 경제, 사회적 수준과 양부모들의 우수한 양육환경이 지능을 높인 것이다.

지능과 높은 관련성을 가진 학업성적과 창의성은 유전보다 가정환경이나 개인의 노력, 의지 등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특히 매력 있는 현대인의 필수요소로 꼽히는 유머감각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

음식선호도는 유전성이 거의 없고 초기 경험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어린이 고객 유치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환경이 좋을수록 그 영향력은 작아진다.

유전자가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범한 가정의 사소한 차이가 성격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주 적다.

매트 리들리 박사는 그의 저서 '양육을 통한 본성(Nature VIA Nurture)'에서 "가정환경은 결핍되면 질병에 걸리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넘어가면 건강증진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비타민C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일련의 암호로서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적 특성을 직접 조절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향후 유전자의 정확한 기능이 밝혀지고, 인체의 모든 유전자를 심어놓은 DNA칩이 개발되면, 인간의 지능, 성격, 행동에 관련된 유전 정보들은 생활 적응문제와 정신지체, 정신질환, 각종 질병 등을 진단하고 예방하는데 활용될 것이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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