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인연 등대원 생활 20년

입력 2004-05-10 11:37:58

"바다를 좋아했던 마음이 등대와 인연을 맺어 20년 세월을 함께했습니다".

청보리가 익어가는 5월,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에 가면 바다를 응시한 채 하얀 몸으로 우뚝 선 호미곶 등대가 있다.

그리고 그곳엔 바닷바람에 미역빛처럼 물든 얼굴의 김종목(金鍾睦.45) 호미곶 등대소장이 있다.

오는 6월1일은 국내에 등대가 설치된지 100주년이 되는 날. 국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이 등대를 어느덧 21년째 지키며 숱한 선박과 뱃사람들의 동반자요, 길잡이로 살아온 김 소장. "처음 등대원 생활을 시작할 때보다는 근무환경이 좋아졌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충남 장항에서 태어난 김 소장의 등대인생은 군 제대후 이웃에 살던 등대지기를 통해서 시작됐다.

평소 바다를 좋아했던 그에겐 늘 바다를 친구삼아 지내는 그 등대원의 모습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1984년 포항해양청 산하 후포등대를 시작으로 그간 울릉도, 죽변, 송대말, 독도에서 근무해왔다.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의지해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외롭고 힘든 생활을 이겨내 올 수 있었다.

"사실 나같이 육지에 있는 등대원들은 그나마 사람구경이라도 할 수 있지만 독도처럼 외딴 섬에 있는 등대원은 모진 고독과 싸워야 합니다". 독도 근무를 경험했던 김 소장은 지금도 전국의 외딴 섬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는 남들이 보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처럼 낭만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등대지기의 현실은 훨씬 힘들고 열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좋은 점은 있다고 김 소장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가족들과 늘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와 딸 둘인 그의 가족은 포항시내에 살고 있다.

늘상 바다를 보며 살아가는 업무특성 때문에 그는 쉬는 날이면 반대로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가거나 밀린 집안 일을 챙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등대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등대는 육지의 도로안내판입니다".

김 소장은 자신들에게 흔히 사용하는 '등대지기'라는 표현 대신 '등대원'으로 불러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기'라는 말이 왠지 듣기 거북스럽다고 했다.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크게 힘든 고비가 별로 없었던 걸 보면 등대원이 제 체질인가 봅니다".

그는 정년까지 20년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바다처럼 등대처럼 그렇게….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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