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의 전설과 신라고분 등 역사적인 유물이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 울릉군 서면 남양리 마을 모퉁이를 지나 돌봉산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골개마을이 나타난다.
주변 산자락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촌이다.
콘크리트 포장이 돼있어 차량이 내왕할 수 있는 꼬불길을 지나다 보면 능선주변 비탈진 남새밭을 평생 일궈온 중년 부부가 사는 독가촌을 만난다.
조상이 물려준 농사를 4대째 지키며 자족하며 살아온 이들의 밭떼기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산나물 수확철은 돌아왔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을씨년스럽다.
산나물 수확철을 맞은 울릉도 지역 농민들은 4, 5월 봄철이면 일손 부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일손돕기를 신청한 지 일주일만에 섬 지역 산나물재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지인 울릉군 서면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산나물 재배 농가에서 수확 최적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들고 오전 8시30분 울릉군 서면사무소 앞마당에 도착하니 작업복 차림으로 완전 무장(?)을 한 10여명이 맞아준다.
정복석(52)면장과 직원들이 이미 산나물 채취에 필요한 낫 10여 그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출발에 앞서 이종택 산업계장이 꼼꼼하게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농가에 도착한 후 절대 피해를 주지말 것, 간식.점심 모두 스스로 해결할 것, 낫으로 산나물을 벨 때 특히 손조심할 것 등을 당부한다.
일손돕기 일행 10명과 함께 차량 2대에 옮겨타고 9시쯤 김성갑.최순자씨 부부(64.60)농가에 도착하니 후덕한 얼굴을 한 최씨 아주머니가 반긴다.
"아이고 면장님까지 오셨능기요, 아이고 고마워라"하면서 좋아라하는 눈치다.
카메라를 가져온 기자까지 같이 왔다고 소개하자 사진은 찍어 뭐하려느냐고 묻는다.
산나물채취 체험이라고 소개하자 "농사가 보기보다 쉽지 않다"며 "오늘 땀 좀 흘려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주인 아저씨가 안보인다고 묻자, "남편은 지난 1월 경사진 밭 위에서 굴러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대구 파티마 병원에 4개월째 입원 중이라 올해 농사는 헛농사를 지은 셈"이라며 연신 한숨이다.
거기다 요즘은 산나물 재배가 고소득 작목이 아니라 사람잡는 골탕초 재배인 데다 일손까지 부족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내년 농사까지 걱정을 늘어놓는다.
마대자루를 하나씩 받아들고 비탈밭으로 향했다.
하루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2천여평에 심어진 섬 특산물 미역취나물을 하루종일 낫으로 베어내 담아야 하는 단순 노동이다.
한자루 50㎏을 베어 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산나물의 떡잎까지 선별해야 하는 작업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이라 다리가 저려온다.
허리쪽으로 몰려오는 고문에 가까운 통증 때문에 5분마다 뒷짐을 지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야 한다.
왜 산나물 재배를 골탕초(?)재배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작업이다.
작업시작 한시간 쯤 지나자 여기저기서 간식이라도 먹자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 참아가며 옆사람의 눈치만 보아온 모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밭에서 일어섰다.
먹는 것보다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이 더 시원하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대충 먹고 난 순서대로 모두가 그늘을 찾아 땅위에 차례로 눕는다.
농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푸른 풀밭의 풍광과 아름다운 농장의 낭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농가소득도 문제지만 막노동보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농사때문에 떠나는 농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날 서면사무소 직원 일행들과 함께 종일 수확한 산나물은 50㎏짜리 20개 포대. 금액으로 환산하면 5백만원 쯤 된다.
그러나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상품화까지는 열흘 정도 시간이 걸린다.
수확한 산나물을 생채로 판매할 수가 없어 밤새 산나물을 솥에 삶은 후 햇볕에 말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천여평에 심은 산나물은 미역취와 더덕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미역취나물은 다년초 식물로 1년에 두차례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간 1천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그러나 인건비, 퇴비 대금 등을 빼고나면 남는 것도 없다.
버릴 수 없는 고향 땅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이어갈 뿐이란다.
차라리 농번기가 끝나면 틈틈이 놀아가며 공사판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돈도 벌고 더 편할 수가 있다는 말에 괜히 가슴이 아파온다.
울릉도 산나물은 눈이 많이 오는 섬 특유의 지질, 기후와 맞물려 이른 봄 눈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그 향이 아주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산촌 노지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자연산과 동일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생산되고 있는 산나물로는 울릉미역취, 섬부지깽이, 고비, 삼나물 등이며 이른 봄철에는 명이(산마늘), 전호, 땅두릅 등도 난다.
전국 유일하게 울릉에서만 생산되는 삼나물은 어린 새싹을 채취해 삶아서 말린 알칼리성 산채로 정력.해독.기관지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빔밥, 무침, 찌개, 탕류 등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는 고급산채도 일품이다.
쫄깃쫄깃한 것이 쇠고기 맛이 난다고 해 고기나물이라고도 하며 현재 신라호텔의 잭슨비빔밥(마이클 잭슨이 방한해 즐겨찾은 음식)에는 삼나물이 주된 재료 중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뱃길 때문에 섬지역의 싱싱한 산나물을 육지로 바로 공수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도 지역실정에 맞는 정주기반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때 농촌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울릉도의 경우 항공노선만 열린다면 서울 등 대도시 농산물시장에 무공해 산나물을 생채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자연히 울릉지역 무공해 산채 재배 농가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오후 6시 해질 무렵. 작업을 마무리하고 한참 최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씨는 큰 딸은 원주에 시집을 보냈고,두아들은 구미와 대구에서 장가들어 잘살고 있다고 자랑이다.
소득이 적은 농사가 지겨워 자식들을 육지로 내몰았다는 말이다.
섬 지역 농촌의 현실이다.
떠나는 농촌을 살리는 길은 없는 것일까. 울릉.허영국기자 huhy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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