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2)미국의 지식인들은...

입력 2004-05-07 09:23:24

오늘날 미국은 일극주의, 패권주의, 그리고 ' 미국만은 예외'라는 생각에 젖어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지식인들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려면 미국의 짧은 지식인의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1776년 미국독립 전후 서구 역사에서 일찍이 본 적 없는 것을 성취했다.

영국.프랑스와 같은 사회혁명도 없이, 유럽 각국이 겪은 수십 년 간의 내란도 없이, 독일.이탈리아.러시아가 경험한 전체주의적 독재도 없이 미국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고 사회적 통합을 달성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권력 분리를 신봉했고, 특히 정부가 사회분야의 지배자가 되지 못하도록 분리시켰다.

미국의 비정부단체, 즉 NGO와 자원봉사의 전통은 여기서 출발했다.

미국이 나폴레옹, 스탈린, 히틀러의 독재를 겪지 않은 것은 유럽 대륙과의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지리적 영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미국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했고 권리를 스스로 지켰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치적 선진국으로 거둔 성공은 그들의 정치원리 못지않게 정치적 방법론이 옳았다는 점도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이 사용한 방법론은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그들은 과거를 복원할 의도가 없었고, 또 복원하지도 않았다.

예컨대 18세기 미국 지식인들은 당시 사회가 애덤 스미스의 주장대로 이미 중상주의(重商主義)사회가 됐음에도 사회제도는 여전히 구시대의 것임을 인식, 그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중상주의 사회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중상주의 이전 사회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유로운 중상주의 사회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이어 자본주의를 정착시켰다.

미국 지식인들은 어떤 인간집단도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절대진리(absolute truth)와 절대이성(absolute reason)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다.

미래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과거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가올 혁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이미 일어난 혁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미래를 해결하려는데 비해 우리는 과거 문제 때문에 국론마저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국 지식인들은 미래의 화려한 청사진이나 만병통치약을 부정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과 이념을 신봉하고, 그것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는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인다.

이념적으로는 원칙주의자들(fundamentalists)이지만 일상 정치에서는 실용주의자들(pragmatists)이다.

이상적인 제도나 완전한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셋째, 미국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문제해결을 위한 처방(prescription)이라고 불렀던 방법론을 즐겨 사용했다.

지상에서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고, 인간은 결코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며, 현실사회와 정치를 자신의 사회적 행동 및 정치적 행동의 기반으로 삼았다.

처방적 접근은 하나의 경제원리이다.

복잡한 것, 값비싼 것, 눈부신 혁명보다는 간단한 것, 값싼 것, 개선을 더 선호한다.

미국은 한때 일본에 뒤지는 듯했으나 소련 붕괴 후 명실공히 미국 일극주의를 달리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지식사회로 진입했다.

요컨대 현재 미국인들의 주요 관심사는 지식사회에서 미국이 어떻게 적응하고 또 중국과 유럽.일본의 추격을 벗어나 선두자리를 계속 유지할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과 뛰어난 개인 정책가들이 활동하던 그런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 지식인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려 할 때 사용하는 원리와 방법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는 원리를 확립하고 있으며, 이를 달성하는 방법으로서 첫째, 과거는 복원될 수 없고 둘째, 미래의 거창한 청사진이나 만병통치약을 기대하지 않으며 셋째,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이곳을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우리 사회를 보면 원리도, 방법도 없는 것 같다.

우리 역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지만 너무도 이상적인 지도자를 선출하려 하고, 또 지도자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해결해 주기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유토피아적 세상이다.

유토피아가 도래할 리 없기에 우리 사회에는 구성원 간에 너무도 큰 복수심(르상티망, ressentiment)이 형성되고 있다.

지식사회에서는 정부가 개인의 지식을 따르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고등학교 졸업생 87%가 대학에 간다.

지식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도 이제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실패를 개인이 책임지는, 그래서 더 이상 르상티망이 생기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이재규

*이재규 약력=△1948년생 △서울대 상학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졸업(경영학 박사) △대구경북 경영학회장 △한국국제경영학회 부회장 △피터 드러커 저서 다수 번역 △현 대구대 총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