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매미'수해 5개월 후 안동 만음2리

입력 2004-05-04 14:01:54

지난해 태풍 '매미'로 쑥대밭이 돼 수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던 안동시 길안면 만음 2리를 반년 넘어 다시 찾은 2일, 처참했던 수해의 흔적은 어느 정도 정리됐고 주민들도 과수원에서 활짝 핀 사과꽃을 솎아내며 서로 담소를 나누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사연 모르는 사람에게 그렇게 비쳐진 것일 뿐 실상 주민들은 아직도 수해가 남긴 생채기로 고통 받고 쌓여 가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해 가슴 치는 격랑속에 있었다.

수해가 마을앞 하천(길안천)을 통과하는 임하댐-영천간 도수관제방 때문에 발생했지만 임하댐관리단에서 원인에 대해 동문서답하고 피해보상은 아예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중만(52) 이장은 "하천 한가운데 2, 3m 높이의 도수관제방이 가로놓여 불어난 강물이 강 전체로 분산되지 못하고 마을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범람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도수관제방은 지난 2001년 하천부지 주변의 나지막한 제방을 따라 성토해 만들었는데 안동시가 2002년 하폭확장공사를 하면서 하천 서편 수십m 뒤로 제방을 새로 쌓는 바람에 하천 중앙부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주민들은 하폭확장 공사와 함께 도수관제방도 신설 제방주변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대로 두는 바람에 강물의 흐름과 수량(水量)이 마을쪽으로 향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수해 직후 임하댐관리단을 찾아 책임을 물었고 관리단측은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도수관제방이 주변지역 유수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용역조사를 상주대학교에 의뢰했다.

용역결과에 따라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논하자는 취지였고 지난 연말부터 올초까지 진행돼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사태해결의 근거가 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엄청난 갈등과 분쟁을 초래했다.

용역 결론의 요지는 만음2리 하천범람의 주원인은 기록적인 강우량 때문이고 도수관제방의 유수흐름 지장 정도는 극히 미미해 수해와 연관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장실사도 재대로 하지 않았고 중간설명회도 엉터리였습니다". 주민 손무용(50)씨는 "처음부터 용역의뢰가 관리단측의 면피용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도 예상대로였다"며 강한 불신을 내비쳤다.

주민들이 용역을 불신하는 가장 큰 대목은 용역팀이 시뮬레이션으로 구성한 홍수 당시 하천담수 단면도다.

이 그림에는 도수관제방이 하천 양쪽 제방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완전 침수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불어난 강물이 하천전체를 뒤덮어 도수관제방이 유수흐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결정적인 부분을 비껴간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격분했다.

도수관제방 높이가 하천 양안의 제방 높이와 비슷한데 단면도에는 훨씬 낮게 그려져 있는 것은 한마디로 자료조작이자 왜곡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손씨는 "당시 도수관제방은 하천이 범람할 때까지도 완전 침수되지 않고 정상부가 드러나 있었다"며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단면도를 제작했는지 속이 터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단은 그런 주민들의 주장은 인정하면서도 용역결과를 신뢰한다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실황조사가 아닌 만큼 작은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책임있는 기관의 정밀조사였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주민들이 요구하는 피해보상은 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주민들은 최근 수자원공사 본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현지 관리단과 재협의를 해보라"는 얘기만 듣고 성과 없이 돌아왔다.

전중만 이장은 "관리단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용역결과로 사태를 종결하려는 것은 수해로 농사를 망치고 좌절한 주민들의 가슴에 두번 피멍을 들게 하는 처사"라며 "하루빨리 재조사에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얘기 끝에 강가로 나온 주민들은 "관리단이 지난해 수해 직후 도수관제방을 올해 장마 이전 신설제방 주변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하고서도 감감 무소식" 이라며 "도무지 책임의식과 성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고 혀를 찼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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