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부부-(3부.18)나는 전업주부

입력 2004-05-04 08:55:23

여성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와 정책이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취업여성을 위한 것이다.

어느 순간 전업주부는 우리의 관심영역에서 사라진 듯하다.

전업주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목소리도, 복지향상을 위한 장치도 드물다.

2004년 한국의 전업주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정의 중심은 전업주부

'무직자' '솥뚜껑 운전사'로 비하되기 일쑤인 전업주부. 그러나 가정에서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고 크다.

남편이 힘겹게 벌어온 돈을 알뜰살뜰 관리해 내 집을 마련한다.

자녀교육을 거의 전담해 책임지기도 한다.

점점 사라져 가는 부모봉양의 미덕을 그나마 이어가는 끈이기도 하다.

맞벌이 부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압박이 크지만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중심 역시 주부다.

결혼 22년째인 이숙희(대구시 동구 신천동)씨는 사업에 3번 실패한 남편이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밑천이었다.

잇따른 실패로 인한 낙담과 가난 속에서도 이씨는 시부모와 자녀를 잘 챙겼다.

가난은 가족관계도 갈라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씨는 흔들리는 가정에서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았고 방황하던 남편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가사노동, 생각보다 비싸다.

주부가 가정에서 해내는 일은 흔히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주부의 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예상보다 훨씬 값어치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되고 가사노동이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몫은 얼마나 될까.

성균관대 김준영 교수가 측정한 주부 1인당 연간 가사노동 가치는 약 1천360만원, 월 노동가치는 113만원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2.5~16.3%(1999년 기준)를 차지한다.

이화여대 문숙재.윤소영 교수팀의 조사도 전업주부의 한달 가사노동가치를 84만~153만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총 가사노동가치는 57조~102조원으로 GDP의 11.9~21.4%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경제성장에 주부의 가정 내 노동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런 조사결과는 취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해왔던 전업주부의 법적 지위와 보상 등을 결정하는 객관적 지표가 될 수 있다.

◇주부들은 오늘도 걱정이다.

전업주부의 걱정은 경제적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나 가족의 경제력에 의존해야 한다.

알뜰살뜰 허리띠를 죄고, 좀 더 싼 것, 싼 곳을 찾아 다리품을 팔아도 당초 소득이 적은 만큼 맞벌이 부부들에 비해 가정경제는 어렵다.

내집 마련도 늦고, 자녀교육을 위한 투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전업주부 박영미(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자녀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청소 일감이 생기면 청소를, 전단지 배포 건이 생기면 전단지를, 식당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소한 아이들 학원비는 자신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월 평균 40만~50만원을 번다.

젊은 전업주부들은 재취업 걱정이 가장 크다.

육아 중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자녀가 자라고 나면 자기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30대 전업주부 이유진(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씨는 "전업주부에게는 아내.엄마.며느리라는 가족내 역할만 있다" 며 "취직하지 않을 경우 자신을 드러낼 만한 낱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취미생활과 봉사활동에도 나서보지만, '시간 많으니 참 좋겠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도 많다.

◇재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

육아문제로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양미숙(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아이들이 유치원.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식당 허드렛일.청소대행업.영업 등 단순 노무나 기본급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일 외에는 기회가 없었다"며 "결혼 전 경력이나 대학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통로는 완전히 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부터 예산 100억원을 투입해 전업주부 10만 명에 대한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조치다.

여성부는 지난 달 7일 회의에서 현재 전국 51개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시행중인 전업주부 재취업교육을 현재 5만명에서 내년부터 10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예산도 현재 77억원에서 100억원대로 대폭 확대할 전망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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