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토끼 없는 잠수함

입력 2004-04-23 13:36:02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냐?" 17대 총선 결과 대구.경북지역 27개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26석이나 휩쓸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물론 그 반대 목소리도 있다.

"노무현이가 한 게 뭐 있어?" "대구.경북에서 견제하지 않으면 누가 해?"

지역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훨씬 모질다.

'영남 지역주의의 발악' '수구 꼴통들의 도시' 등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거나 '섭섭한' 말도 적잖다.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지역주의'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솔직히 지역의 여론 주도층 중에는 한나라당 싹쓸이 총선 민심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적잖았다.

대구.경북이 정치적으로 '왕따' 당하고 지역 발전에도 장애가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지역 열린우리당 후보의 전멸로 벌써부터 지역 이익을 대변할 인물이 없다는 얘기도 나돈다.

그러나 총선에서 표출된 지역 표심은 한나라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오매불망 한나라당을 밀었을까? '차떼기 당'이란 오명에다 온갖 부정부패에 연루된 당, 정부.여당의 '개혁'을 사사건건 발목 잡는 당, 구시대적 색깔론으로 연명하는 수구당 등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은 당인데도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지역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해방 후 우리 정치에서 최선은 없었다.

늘 차선을 골라야 했다.

그도 아니면 차악을 선택해야 했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압도적으로 표를 몰아준 '지역 정서'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내놓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대구.경북 유권자 다수는 열린우리당을 '최악'으로 한나라당을 '차악'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만한 '최악'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지역주의에 매몰된 편협하고 낮은 정치의식의 발로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이 그런 것을.

지역 유권자들도 이번 총선 투표결과를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투표는 '감정'대로 해놓고 정치가 '개판'이니 정치인들은 모조리 '나쁜 놈'이니 이런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번 선거는 정책이나 이슈, 인물 검증 등이 '바람'에 모두 묻혀버렸다.

너도나도 고운 놈, 미운 놈 고르는 '묻지마 투표'에 나섰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게 아니라 난장 치는 선거였다.

이 때문에 자질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도덕성에 하자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 후보들이 적잖게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고교졸업 후 고향을 떠나 고향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작대기 당선자'도 눈에 띈다.

이들은 10여일 선거운동만으로 '얼떨결에' 금배지를 달았다.

선거운동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지역 표심'에 묻어서 당선됐을 뿐이다.

'무임 승차' 의원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거나 유권자들을 무서워할 리 만무하다.

선거 때만 내려와 '미워도 다시 한번'만 외치면 되는 터에 이것저것 눈치볼 게 무언가.

그렇다면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대거 당선시켰으니 지역 유력 정치인들이 다음 대통령선거 때 대권 후보로 부상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기대 난이다.

오히려 지역 출신의 '대권 가도'를 가시밭길로 만들었다고 본다.

'영남당'이란 족쇄가 채워진 한나라당에 영남 출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 당선될 수 있다고 보는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이 족쇄를 풀고 호남과 충청권 표심을 얻지 못하면 재집권은 상당 기간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차라리 영남지역에서 여당에 의석을 조금 내주면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면 다음 대선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처절한 패배가 철저한 자기 반성을 불러 환골탈태할 가능성이라도 열었을 것이란 얘기다.

20세기 초 잠수함은 요즘 잠수함과 달리 수시로 물위로 떠올라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아야 했다.

그래서 공기가 탁해지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를 잠수함에 승선시켰다고 한다.

독일잠수함 승무원이었던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소설 '25시'에서 밝힌 얘기다.

대구.경북과 한나라당호에 승선했던 '토끼'는 지금 죽었다.

대구.경북과 한나라당은 '토끼'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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