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황소의 난(黃巢亂) 진압
875~884년까지 10년 동안 당나라 전국을 들끓게 했던 황소의 난이 진압됐다.
지도층의 분열로 세력이 약화되고 반란의 주동자였던 황소가 자결함으로써 막을 내린 것이다.
황소의 난 이전 당나라는 환관들의 횡포와 지방 번진(藩鎭)의 세력이 늘어났다.
부상(富商).토호(土豪)는 땅을 넓혀 갔으며, 세금과 소금.차(茶) 등의 수탈이 심했다.
땅을 잃은 유민들은 도둑의 무리가 되고,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던 소금 밀매상인들은 단결하여 염적(鹽賊)이 됐다.
황소.왕선지 등은 이들 반항세력을 규합, 산둥 10여 주를 공격하여 약탈하고, 강력한 하극상의 풍조를 조성했다.
왕선지가 죽은 후 반란군의 수령이었던 황소는 한때 장안성을 탈취해 스스로 황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통치능력이 부족한 데다, 유력한 부장 주온(朱溫)이 당나라 조정에 항복하는 바람에 토벌군에게 격파되었다.
황소는 정부군에 밀려 883년 장안에서 동쪽으로 퇴각한 뒤에도 신출귀몰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토벌군에게 계속 쫓기던 황소는 884년 산둥의 타이산 산에서 자결했고 난은 평정됐다.
이들이 장기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 밀매로 형성한 조직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나라는 소금 산지가 일정 지역에 편중돼 있기 때문에 이를 독점하면 엄청난 부를 이룩할 수 있었다.
황소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당나라 왕조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특히 황소의 난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요직에 앉은 주전충은 907년 비틀대는 당나라를 무너뜨리고 후량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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