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날이다.
1967년 이날 과학기술분야를 전담하는 독립적인 정부 부처가 탄생한 것을 기리고 과학기술 발전을 다짐하기 위해 과학기술처 발족 1돌이 되는 날인 1968년 처음으로 과학의 날 행사를 가진 것이다.
올해로 37회가 되는 과학의 날은 그래서 다분히 관료중심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과학의 날이라는 행사가 열린 것은 일제시대인 1934년 4월19일이다.
▲70년전에 '과학데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과학데이를 만든 사람은 김용관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그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발명학회를 조직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발간했다.
발명학회에는 변호사 이인, 시인 주요한 이은상, 정치가 윤치호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민중 계몽을 위해서 기념일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4월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한 것이다.
▲그날은 찰스 다윈이 죽은 날이다.
다윈의 기일을 과학데이로 정한 것은 다윈이 유명한 과학자이면서 그의 진화론이 당시 독립을 갈구하던 민중의 염원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당시 민족진영에선 나라를 되찾으려면 물산을 장려하고 민족자본을 육성해서 경제적 자립을 이룩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과학기술이 바탕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김용관 등 선각자들은 과학데이에 "한개의 시험관은 전 세계를 뒤집는다.
과학의 승리자는 모든 것의 승리자다.
과학의 대중화운동을 촉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대대적인 계몽운동을 벌였다.
제1회 과학데이를 성공리에 치른후 여운형 송진우 김성수 김활란 등 당시 지도급 인사 100여명이 참여한 '과학지식보급회'가 결성됐고 이후 과학 대중화운동은 과학지식보급회서 맡아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독립운동이나 다름 없었던 과학데이를 일제가 그대로 둘 리 없었다.
▲1937년부터 과학데이 옥외 행사가 금지되고 이듬해 김용관이 체포 구금됐다.
탁월한 활동가 김용관이 사라지자 과학지식보급회는 해체되고 과학데이도 사장됐다.
발명학회는 일본발명학회 조선지부로 흡수돼 친일단체로 변하고 말았다.
일부 뜻있는 인사들은 과학대중화운동의 시원이자 민족해방운동이나 다름없었던 과학데이의 이념을 되살려야 한다며 과학의 날을 4월19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공계가 쇠락하는 척박한 오늘의 과학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 어려웠던 시절의 꿋꿋했던 시대정신으로 되돌아갈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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