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후 정국풍향계-(4)의회문화의 혁명

입력 2004-04-21 11:46:49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17대 국회의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

재야 투쟁에 익숙했던 제도권 밖 경험이 원내에서 어떻게 드러날지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민노당은 벌써부터 "민노당의 대안적 개입이 시작되면 양당 붕괴는 급격화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또 헌정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로 늘어난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파격이다.

여성 정치인 시대는 섬세한 '감성정치'의 도래와 '우먼파워'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진출 의미=민노당의 첫 원내진출은 의회권력의 독과점 붕괴를 의미한다.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르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모두 한 자리에 올려지게 돼 제도권 안이니, 밖이니 하는 구분이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정쟁의 도화선이 됐던 '색깔론'은 자취를 감추고 정파간 이념을 담은 제도권 내에서의 정책 대결만이 가능하게 됐다.

비록 지역구에서는 2석밖에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정당 득표율 13%로 8명의 비례대표를 얻은 민노당의 총선결과는 정치개혁을 바라는 일반국민들의 또 다른 의사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민노당의 성공은 진보정당의 본격 도래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과거 이승만 정권시절, 조봉암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이 있었고 이후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사회혁신당, 통일사회당 등의 이름으로 명맥이 근근이 이어졌지만 글자그대로 '재야(在野)'에 불과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한국노총을 주축으로 한 녹색사민당이 진보정당의 애드벌룬을 띄웠으나 총선 뒤 해체됐다.

그러나 민노당의 정계진출은 진보정당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과 동시에 '재야급진정당'이 수권능력을 갖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유럽의 경우처럼 과격한 이념에서 출발한 정당이 제도권 내에서 정책정당으로 변환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민노당은 벌써부터 정책정당을 지향하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달말부터 정책연수를 시작, 매주 의원 당선자들의 발제와 현장 활동가들의 정책제언으로 정기 세미나를 가질 예정이다.

또 정책중심의 원내활동 지원을 위해 정책위원회 산하에 의정지원단과 공동정책보좌관제도를 운영하기로 하고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중앙위원회에서 '국회 의원단의 운영과 지원에 관한 규정'을 제정키로 했다.

◇젠더(gender) 혁명=이번 총선 결과, 여성의원을 헌정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 수인 13%로 끌어올렸다.

비록 지역구 여성의원은 9명에 불과하나 비례대표 56명 중 30명을 여성으로 채워 여성 정치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성 정치인이 많아졌다는 것은 남성 의원들이 손대지 못했던 여성의 권익과 사회약자에 대한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여성의 손끝으로 다루는 정책이 남성의 거친 손에 비해 '결'이 고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당장 여성부나 국회 여성위원회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남성중심의 딱딱한 의회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정쟁의 일선에 섰던 각 당 총무단에 여성이 참여할 경우 여야간 강경 대립노선이 옅어질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부정부패의 고리에서 자유롭고, 남성 중심의 지연.학연.연고주의를 벗어나 여성 특유의 대화정치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란 가능성 역시 크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국회변화의 물결이 드셀 전망이다.

지금까지 남성 의원 전용 사우나실밖에 없었지만 내달 중 '여성의원 체력단련실'이 새로 생긴다.

또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선출된 장향숙 당선자를 위해 휠체어 통로 확보와 여성 장애인용 화장실 공사도 준비 중이다.

한나라당 김희정 당선자(부산 연제)는 "젊은 여성으로 변화를 눈으로 보여주겠다"면서 "여성의원들의 정계진출은 바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조배숙 당선자(전북 익산)는 "유리알 같이 투명하고 맑은 여성정치로 부패와 구태로 얼룩진 정치를 몰아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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