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누고? 경봉스님
두 호랑이가 사람을 가운데 두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 중국 고대의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놈은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고.
총선도 끝났다.
선거캠프에는 아직도 그 희비에 휩싸여 있을 타임이다.
어쩌면 이 시각까지도 내 탓이니 네 탓이니 하며 자랑과 원망이 뒤엉켜 실타래 같은 분위기로 어수선 할게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사람을 사이에 둔 호랑이들- 게 중에는 고양이도 있었고 살쾡이도 많았었지만- 잔치는 어찌됐던 끝났다.
무수한 말의 돌멩이들이 날고 뛰고 했던 선거.
경봉(鏡峰)스님.큰스님.작은 스님이란 말은 없다.
스님의 평소 말씀을 엮은 '니가 누고?'란 책이 있다.
법어집이다.
법이란 글자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대신 무척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읽으면 저절로 생각을 하지 않고는 베겨 나지 못한다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무슨 생각? 그저 생각이다.
저절로 생각되는 생각. 스님이 살아 계셨을 적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뵈러 통도사 극락암까지 가곤 했다.
한 말씀 듣고 돌아 갈 때면 스님은 늘 대문까지 배웅 해 주신다.
그 대문이 금강문이다.
그러면서 스님은 "금강문 밖에는 돌부리가 많으니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잘들 가거라"고 하시며 껄껄 웃으신다.
그 때는 다들 그냥 따라 웃는다.
그러다 한참 지나 생각해 보면 그게 보통 웃음이 아니란 걸 느낀다.
쉽게 넘어지지 말고 삶을 잘 살라는 말씀이다.
가뜩이나 줄줄이 잘도 넘어지는 우리 아닌 우리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책 제목이 좀 시큰하지만 스님의 언취가 물씬 느껴지기도 한다.
경상도 언어감이 이 책을 쥐는 독자의 옆 볼기를 어언중 한 대 갈기며 빨리 읽어보라는 채찍 같다.
정말 니는 누구일까. 그러는 니는 누구란 말인가. 그렇게 아둥바둥하며 살아가는 니는 과연 참 모습이 무엇이란 말인가. 힐문하는 투가 약간은 거만스럽게 읽힐 수도 있지만 단도직입적인 이런 직설이 주는 매력은 돌멩이 많은 세상에는 정말이지 제격이다.
원래 이 책은 스님을 모셔온 명정스님이 지난 75년 펴낸 '경봉스님 말씀'이란 책을 지난해 다시 현대적으로 고치고 내용을 가감하면서 새롭게 제목을 고친게 '니가 누고?'다.
스님의 법어집은 이 외에도 많다.
그런데 한결같이 책 제목이 멋이 있다.
'극락에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살아라'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아쉬운 것은 이들 책들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절판이 되었거나 '니가 누고?'처럼 새롭게 장정이 되어 재출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스님의 어록은 출간된 것 외에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이도 또한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님은 온갖 일화나 심지어 어려운 공안을 쉽게 다가 갈 수 있도록 쉬운 말씀으로 이끌어 준다.
그래서 책 내내 강조하는 것은 열심히 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평생을 공부하라는 말씀이다.
마음의 꽃을 피우자면 죽자 사자 고생을 하고 애를 써야 되는 것이며 매화가 찬 눈 속에 피면 그 향기가 그윽하게 짙고 수행인이 신고 끝에 도를 알면 마음의 광명이 온 누리에 비춘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은 수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다시 스님의 말씀을 들어 보자. "우리들이 먹고 입고 주 하는 의식주. 세 가지 일에 날마다 노력하는 이십사시간 가운데, 아홉 시간 일하고 다섯 시간 놀고 여섯 시간 잠자고도 네시간이 남아 있으니, 다만 한 시간이라고 내 주인공을 찾는 여기에 진력을 다 해야 한다.
그런데 앉아서 자성(自性) 자리를 찾고 있지만, 마음은 서울로 쫓아 갔다가 대구나 부산으로 갔다 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일 현재 일 미래 일이 생각 키워서 그 망상 도적이 들어앉아 있으니, 집안에 도적이 들어앉아 있으면 주인이 방에 들어가기도 무섭고, 겁이 나서 밖으로 쫓겨 나가듯이 망상 이것이 앞을 가리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순일 하지 못하다.
이것을 순일하게 하려면 수련을 하고 닦아 나가서 그 분주한 마음이 가라 앉아야 한다.
...석가탑에는 부처님 사리만 봉안했지만 여러분에게는 산 부처가 들어 있어 오고 가는데 아주 편리하고 자유자재한 것이다…. 내가 늘 말하기를 이 사바세계에 우리가 나왔는데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연극 한바탕 멋들어지게 하고 가자는 말이 그런 까닭이다".
그리고는 스님은 지난 82년 삼소굴(三笑窟)을 떠나셨다.
미소를 보이시던 중 떠나셨다.
바로 그 전에 시자스님이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 모습입니까"하고 물으니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하신 후 열반에 드셨다.
마치 "그렇게 묻는 니가 누고?" 하시며 떠나신 것 같다.
정말이지 우리들은 누구일까. 온 나라가 엉망진창으로 부대끼며 싸운 어저께. 우리끼리 싸운 개개의 니는 진정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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