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원내 과반의석
을 갖춘 '거대 여당'의 탄생으로 나타났다.
지난 88년 12대 국회 임기가 만료된 이후 여당이 원내 과반을 점하는 여대야소
의 출현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김대중 전 정권 출범 당시인 지난 1997년 12월 이래 처음으로 이뤄진 의회권
력 이동으로 '소수정권'의 이름은 일단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국 의회사와 선거사에 큰 획을 긋는 이같은 결과에서 읽혀지는 민심은 헌정사
상 초유의 사건인 국회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반발정서와 새로
운 정치에 대한 기대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다.
총선전 불과 47석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의 대약진은 '탄핵정서'를 분리해서 생
각할 수 없고, 의회 구성원의 대폭적인 물갈이와 세대교체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
는 여론의 투영이라는 각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총선의 당선자를 보면 30대 24명, 40대 102명, 50대 124명 등 50대 이하가
전체의 83.6%인 250명에 달해, 세대교체가 급속히 진행됐다.
또 16대 국회의원 273명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생환한 의원은 27.3%인 76명에
불과했다. 이는 26명이 늘어나 의원정수가 299명이 된 17대 국회에서 차지하는 비율
이 25%에 그친다는 얘기여서, 새 국회에는 4분의 3의 의석이 사실상 신진기예로 수
혈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과거의 정치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국회는 이번 총선의 급속한 세대교체
와 광범위한 물갈이로 인해 새 판이 짜여진 셈이고, 따라서 새 국회는 유권자들의
이런 선택에 부응할 과제를 안고 출발선에 서게 됐다.
또 한가지 이번 총선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여겨져온 영남권에서 당선자를 배출, 정치적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남지역에서 상당한 의석을 얻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당초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최소한의 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엄격한 잣대로 보면 4.15 총선도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에
뿌리를 둔 정당간 동서분할 구도를 극복하는데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17대
국회에 지역주의 극복의 과제를 안겨줬다.
치열한 원내 1당 다툼을 벌였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일부 지역구를 제외하
고 영.호남을 양분해 나눠가졌다. 심하게 말해 호남에서는 종전까지 맹주였던 민주
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주인공만 바뀌었을뿐이다.
호남의 맹주가 바뀐 이유는 호남의 유권자들이 반(反) 한나라당 정서 속에서 민
주당을 외면한 채 확실하게 열린우리당을 밀어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선대위원장은 '삼보일배'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끝없는 애정표시로 지역정서를 자극하며 전통적 지지층의 재결집을 시도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자민련이 완전한 퇴조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충남에서만 지역구 4석을 건져올린
것은 아직도 'JP(김종필) 정서'가 힘을 쓰고 있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함께 이번 총선의 중요한 특징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첫 원내진출과
개혁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의 대약진으로 원내 이념의 지도가 보-혁구도로 재편됐다
는데 있다.
민노당은 44년만에 진보세력의 원내진출이라는 숙원을 풀었고, 앞으로 이라크
파병 등 외교분야뿐아니라 분배중심의 경제정책 추진 등 정국 주요 현안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개혁의 중심세력으로, 보수진영의 이해를 대변하는 한나
라당과 대립각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과반을 확보한 열린우리당
이 대화와 타협의 묘를 살려나간다면 전에 없이 원만한 국영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
는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단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을 점함에 따라, 선거를 치른 뒤에 호사가들의 입
에 오르내리던 '인위적' 정계개편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법이 엄격하게 강화되고 선관위의 권한이 강화된데 따라 선거법 위
반으로 당선무효를 당할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선거 후유증은 적
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7대 국회는 가장 처음으로 16대 국회에서 이월된 '대통령 탄핵안' 문제로 머리
를 싸매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려야 한다는 기
존의 당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한나라당내 새로운 당선세력의 주장으
로 당론 변경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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