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창의적인 사고와 교육

입력 2004-04-15 09:06:06

지난해 무더운 어느 날, 한 초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과학에 대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시간의 강의 시간은 내게 매우 인상적이고 보람되었다.

과학반에 모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눈이 초롱초롱했고 강의 중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손을 크게 뻗어올리고 "선생님" 하고 외치면서 서로 자기 질문을 받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질문도 있었지만 핵심을 찌르거나 매우 참신한 질문도 많이 있었다.

만일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한 학생에게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고 핀잔을 주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학생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질문은 멈출 것이며 더 이상 창의적이거나 참신한 사고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우려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안식년 중 둘째 아이가 미국 중학교에 1년을 다닌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질문을 하도록 선생님으로부터 격려받으며 선생님 질문에 서로 대답하려고 손을 뻗어 올리고 또 대답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습관에 젖어 있다가 한국 중학교로 전학한 뒤 둘째 아이는 처음에 상당한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었다.

수업시간마다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초지일관 질문을 했었으나, 다른 아이들로부터 "왜 튀게 행동하느냐?"라는 압력과, 선생님으로부터도 유사한 핀잔을 들으면서 1주일 정도 지나서는 드디어 질문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수업시간을 묵묵히(?)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대부분 학생들 역시 수업시간에 매우 조용한 것을 본다.

이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사람마다 사고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새로운 학문을 습득하고자 할 때 교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지식을 학생이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교과서의 경우도 저자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100%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수업 중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면 논리적 사고의 흐름이 방해되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그 과목을 매우 어려운 학문으로 규정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반대로 학생의 질문은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의 이해에 크게 도움을 주고 그 과목에 대한 흥미를 돋울 수 있다.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른 여러 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가 자극되고 발전되어 창의적인 발상이 탄생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한국과 외국의 대학원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일을 하고 있다.

이때 관찰하게 되는 것은 서양의 대학원생들과 비교해서 한국 학생은 토의에 있어 매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학문적 지식이나 배경 및 노력의 관점에서 한국 학생은 결코 외국 학생보다 뒤지지 않지만 창의성이 부족하고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려는 의욕이 적다.

반면 외국 학생의 경우 기초 지식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을 발표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과학분야 연구에 있어서 창의성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여 다른 사람이 이룩해 놓은 것을 알아내더라도 거기서 발전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주장이나 결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커다란 의미가 없다.

반대로 이론적인 기초지식은 부족하더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밝혀낸다면 100% 이상의 일을 한 것이다.

과학 분야의 길은 수업과목의 성적을 잘 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기초 지식을 섭취한 뒤에 자기만의 고유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만 의미 있는, 인류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대학교육만 바꾼다고 될 수는 없다.

먼저는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이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교사들이 학생을 격려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겠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에서 대학입시가 아무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학생들에게 단지 문제에 대한 순발력과 정확성을 키우기 위해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긴 안목으로 볼 때 위험할 수 있다.

글로벌 사회 속에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훈련된 이러한 수동적인 공부방식은 이미 굳어져서 대학에 들어온 뒤에 쉽게 바꾸어지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발표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능동적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 습득은 시험이나 입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활용이 그 목적이므로, 발전시켜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전달되어야 한다.

효과적인 전달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초등학교 때부터의 지속적인 발표훈련으로 가능한 것이다.

제정호 포항공대 교수.신소재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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