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수준있는 유권자가 되려면

입력 2004-04-07 11:50:02

세상 살다 보면 가끔 고사가 생각난다.

조조의 위(魏)와 대치하고 있는 오(吳)와 촉(蜀)은 공동대처를 한다.

그런 가운데 오의 주유는 제갈량을 제거하기 위하여 전투에 필요한 화살 십만개를 열흘안에 만들 것을 요구하자 제갈량은 사흘만으로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하니 주유는 이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느 안개짙은 밤에 제갈량은 빈배에 짚을 가득 싣고 조조진영에 당도하자 조조는 적의 공격이라 생각하고 수십척의 배에 화살을 충분히 쏘아댄 후 곧 속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제갈량의 배는 사라진 뒤였다.

제갈량은 그많은 화살을 너무나 쉽게 얻어 주유로부터의 위기를 모면하였고 마침내 그 화살은 적벽대전을 기화로 조조에게 원없이 되돌려 주었다.

이른바 증오와 무모함, 그리고 계략의 한 판이었다.

우리는 탄핵 이후 언론에 나타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상당수의 국민들이 대통령의 탄핵은 바로 대통령을 쫓아낸다고 생각한다든지, 또는 탄핵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탄핵 이후 그동안에 진행된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면 법은 법대로 정서는 정서대로 따로 작동하고 있음을 본다.

우리 헌법상 탄핵소추는 권력분립원칙상 국회의 국정통제권의 하나이며, 이는 집행부와 사법부의 권력남용을 방지하고 그 권력의 합리적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관에 대한 감시.비판.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헌법에서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는 헌정중단도 아니며, 국회의원도 똑같이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들이다.

그나마 지난 선거때 그들은 엄선해서 뽑힌 자들이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제국가에서는 일어나기 희박한 일일뿐더러 이에 대한 발의도 국민의 여론을 배경으로 하여 이를 행사하는 것이 가장 실효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탄핵소추가 있기 전의 일반 여론은 탄핵에도 반대하지만 대통령도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했다.

여론대로만 한다면 두가지 다 이루어져야 하며 심지어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에 머물 때는 물러나기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여론은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여론대로 한다면 법이 필요하겠는가. 탄핵소추 의결 후 보이는 것은 탄핵반대시위만 격렬하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헌법은 해방 이후 민주와 법치를 기본으로 하여 나름대로 꾸준히 쌓아올린 금자탑이지 누구의 주장같이 일부세력이 탁상위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도 가장 완벽한 제도는 아닐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그만한 것도 없기에 우리는 이를 준수해야 한다.

현행 헌법을 잘 지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민주적이라 할 수 있으며, 헌법은 필요하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개정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일년 동안 어지러운 나라꼴을 보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특히 지난 한달은 도무지 어떻게 살았는지 정신이 없다.

정말 "국민 못해 먹겠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어떻게 되었기에 어느당의 인기가 갑자기 급상승하고, 어느당은 당대표가 바뀌면서 금방 인기가 상승하는 정도이니 이래서야 성숙한 민주시민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살면서 자기가 한 일에 가끔 후회를 하곤 한다.

그것도 흥분상태에서 결정한 일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번 선거는 앞으로 4년간 국민을 대표할 선량을 뽑는 중요한 국가대사이며 또한 선거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간 우리나라의 정당은 필요할 때마다 급조되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신뢰가 가지 않고 공약 또한 급조한 것이 많아 믿음이 쉽게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후보자 개인의 자질을 중심으로 냉철히 판단하는 것이 그래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도덕성이나 깨끗함에 대한 요구는 개정된 선거법과 부패에 대한 그동안의 혐오감으로 그리고 국민들의 감시로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 일은 젊고 깨끗함만이 능사는 아니며, 더욱 중요한 것은 능력과 노련한 경륜이다.

대통령탄핵 그 자체는 결과적으로 거대한 야당으로부터 빚어진 일이라면, 반대로 거대한 여당이 가져올 정국도 아울러 헤아리는 현명한 유권자의 판단이 절실히 기대된다.

우리는 어쨌든 외국언론이 보는 바와 같이 아직 민주주의의 미성숙단계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번 선거를 잘 치름으로써 전 세계에 보다 성숙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지구상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멋진 이정표를 세우는 나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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