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이웃들 끼니 해결 마지막 보루
하반신마비 장애자인 주부 이모(37.여)씨는 지난 겨울 긴 여정에 올랐다.
자신의 집이 있는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서 중동교를 건너 남구 봉덕2동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휠체어를 타고 간 것. 이날 이씨가 도착한 곳은 '푸드뱅크'(식품나눔제도).
남편을 사별한 뒤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하던 이씨는 먹을거리가 궁해지자 입소문을 통해 들은 푸드뱅크로 어렵게 찾아간 것. 이날 이씨는 흠뻑 흘린 땀만큼 휠체어에 빵 등 식료품을 가득 싣고 돌아갔다.
이 일은 대구광역시 푸드뱅크 종사자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씨처럼 휠체어를 탄 채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와야 할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소외 계층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자신들뿐이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푸드뱅크 사업이 이제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5년 전 시작된 이후 푸드뱅크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여전히 늘고 있지만 경기 불황으로 음식 기탁량은 계속 줄고 있는 탓이다.
푸드뱅크에서 일하는 김은주(32.여) 사회복지사는 "받으러 오겠다는 단체 또는 개인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늘고 있으나 식료품 등을 기탁해 오던 이들은 자신들도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양을 점점 줄여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푸드뱅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빵은 기탁하는 제과점들이 여유분을 대폭 줄여 판매 예상분만 만들면서 기탁되는 수량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
이때문에 2월말에는 대구광역푸드뱅크 식료품 저장실에 있는 12칸의 냉장고 중 반 이상이 비어있기도 했다.
또 각급 학교가 개학한 요즘은 매일 4, 5곳의 학교에서 남은 급식물을 보내고 있고 일부 대기업의 대량 기탁이 조금 늘면서 형편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수요에는 턱없는 수준이라고 푸드뱅크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곳에서 음식공급을 받는 '사랑의 손잡기 실천본부 근로자의 집' 노숙자 쉼터 직원 문승환(34)씨도 "6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쉼터에 노숙자들이 늘면서 푸드뱅크를 자꾸 찾아올 수밖에 없지만 이곳도 사정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대구광역푸드뱅크 안희종 운영자는 "최근 들어 어떤 날은 음식 보관 냉장고가 텅 빌 때가 있어 무척 마음이 쓰리다"며 "어려울 때마다 서로를 돕는 이웃 정신을 되살려 저소득가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음식기탁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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