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섬기는 자

입력 2004-04-06 09:21:16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른바 명당자리는 요즘 밤낮 시끌벅적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후보자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저마다 로고송 볼륨을 한껏 높여놓고 행인들과 차량행렬을 향해 굽실굽실 절을 한다.

유권자들은 짐짓 무심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한번 쓰윽 쳐다볼 뿐이다.

속으로는 고개 빳빳한 후보자들로부터 언제 이토록 정중한 절을 받아볼 것이냐, 쾌재를 부르면서. 좀 짓궂긴 하지만 후보자의 부인이 얼마나 공손하게 절하느냐 비교하며 점수를 매기는 것도 선거철 유권자들의 재미 중 하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도 유권자들은 담박에 누가 운동원이고 누가 부인인지 가려낸다.

평소와 달리 이웃 아줌마처럼 검소한(왜 하나같이 검은 옷인지?) 차림으로 애원하듯 절하는 모습에 안쓰러워하면서도 한편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후보자들의 시커멓게 탄 가슴과는 달리 지난 주말 경주는 꽃대궐이었다.

온 천지가 흰 빛도 아닌, 분홍도 아닌, 묘한 빛깔의 벚꽃들로 뒤덮여 폭설이 내린 듯 장관이었다.

그 아래로 청춘남녀들이 씽씽 자전거를 타고가는 모습은 퍽이나 싱그러웠다.

반면 노인들은 환한 꽃그늘 아래서도 어딘지 처연해 보였다.

그 얼굴들엔 "앞으로 봄꽃놀이에 몇 번 더 올 수 있을꼬"하는 듯 한숨이 배어있었다.

향기로운 봄 잔치는 세파에 찌든 우리네 세포 구석구석을 말갛게 씻겨준다.

하지만 고개 돌려 세상을 보면 공허한 말잔치로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예부터 '다언(多言)이면 삭궁(數窮)(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이라 했는데, 이런저런 설화(舌禍) 속에 달콤한 교언영색(巧言令色)들이 우리 귀와 눈을 어지럽힌다.

그토록 화려하던 꽃잔치도 결국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지혜로운 자라면 대자연의 편지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는다면 권력도 명예도 한갓 속절없는 것이라는…

며칠 후면 부활절. 성서의 한 일화가 새삼 의미있게 다가온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크냐(파워가 있느냐) 하는 문제로 설왕설래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 상품의 바코드를 읽어내듯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면 네거리에서 외치는 저들의 마음에 갖다대보고 싶다.

그래서'며칠간만 죽자. 4년간의 영광에 비하면 이까짓게 대수냐'는 생각을 품은 자들일랑 가차없이 ×를 해버리게. 지금 우리에겐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처럼 진정으로 국민을'섬기는 자'가 필요하다.

전경옥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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