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순간의 선택이 10년 좌우

입력 2004-04-02 14:03:57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지난달 26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한 인터뷰가 뒤늦게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에 변화가 왔고,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며 "그런 의미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60대와 70대 어르신이 들으면 당연히 발끈할 말이다.

게다가 집권 여당의 대표가, 그것도 총선을 바로 코앞에 두고 한 말이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20대와 30대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하고자 꺼낸 말이라니 일견 이해도 간다.

총선 승리는 당 대표의 최우선 과제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정 의장처럼 드러내놓고 말을 못하지만 한나라당도 '20대와 30대는 투표 안 했으면…' 하는 심정이 아주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60대와 70대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20대와 30대가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판세를 일거에 뒤집고 총선 승리가 확실하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40대와 50대는, 이제는 정치판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계인'이 된 듯 해 착잡하다.

△경계인 세대의 아픔

여러분은 '사오정'과 '오륙도'의 틈바구니에 낀 이 세대의 아픔을 아는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서 나눠주는 옥수수 빵을 얻어갈 때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뺏겨 울고, 소풍 가는 날 배낭 속에 든 사과 몇 알과 삶은 계란, 사탕은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 꼭 남겨가야 하는 줄 알았던 세대.

어둠침침한 단칸방에서 침 묻힌 몽당 연필로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 와 나하고 놀자'고 쓰다가 엄마.아빠와 함께 잠잘 때는,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가 없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참말인 줄로만 알았다.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워 선생님께 회초리를 맞고,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 혼자인 줄 알았으며, 무슨 이유든 나라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던 세대.

△중학교도 입시, 고등학교도 입시, 대학은 예비고사와 본고사.

70, 80년대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IMF의 칼날 위에 서고, 그러다가 이제는 '사오정' '오륙도'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혹시나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공연히 죄스러운 마음까지 갖는 세대.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독재자로 모시는 첫번째 세대.

60, 70대에 답답해하면서도 20대와 30대가 켜든 촛불이 혹시나 그들의 미래까지 태우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다 이제는 60, 70대와 20, 30대 어느 쪽에도 선뜻 같이 하기가 거북한 경계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경계인 세대라고 해서 만만히 보지 말라. 퇴출의 두려움에 날마다 밤잠을 설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 사회의 어엿한 중추다.

20, 30대의 열정과 60, 70대의 원숙함을 함께 아우르고 세대간의 깊은 골을 메우는 일도 경계인 세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4.15 그들의 '선택의 날'

4.15 총선 선거전이 오늘부터 본격화됐다.

그리고 오늘부터 13일 후에는 어느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경계인 세대의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 같다.

20대 유권자가 22.1%, 30대 유권자가 24.9%라지만 40대 유권자도 22.8%, 50대도 13.2%나 된다.

예전 선거 때마다 이들의 투표율이 20대와 30대보다 높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경계인 세대'의 선택이 끼칠 영향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80년대에 크게 히트한 광고 중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번 선택은 '경계인 세대' 여러분의 향후 10년은 물론 아들.딸의 먼 미래까지 좌우할지 모른다.

그만큼 우리의 지금 사정은 절박하다.

투표장으로 들어서는 선택의 순간까지 경계인 세대에는 많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지연, 혈연, 학연에 지역주의, 이제는 식상할 대로 식상한 TK의 자존심까지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올 것이 분명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좋다.

하지만 15일,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기 전에 이 말만큼은 꼭 다시 한번 더 되새기기를 당부드린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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