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생들은 방학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방학이 되면 학교를 다닐 때보다 몇 배나 더 고달픈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제물이 많아서 고달픈 것도 아니고 놀거리가 많아서 고달픈 것도 아니다.
단지 평소보다 더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고달픈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들이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더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을 나타내 보인다.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닌데도 자기 자식을 여덟 군데 정도의 학원에 등록시키는 부모들이 부지기수다.
이쯤되면 아동학대 수준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敎育)이 곧 고역(苦役)인 것이다.
심지어는 한국 사람의 구강구조가 원초적으로 영어의 r발음과 l발음을 명확하게 구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유치원에 다니는 자기 아이의 혀를 수술해 주는 부모까지 있었다.
얼마나 거룩한 사랑인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감행했던 맹모(孟母)의 삼천지교(三遷之敎)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부모들은 한결같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내 아이가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한번쯤 숙고해 보라. 남들이 다 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들은 자식을 인생의 승리자로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거액의 사교육비까지 투자해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학문적 고문을 감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을 상실한 교육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리가 만무하다.
타고난 기량을 갖추지 못한 아이에게 적성에도 맞지 않는 분야를 선택해서 무리한 경쟁을 강요하다 보면, 아이는 매사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날이 갈수록 무력감만 증대되어, 마침내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험을 전후해서 청소년들의 자살빈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그 위험성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부모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백수건달을 면치 못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자식만은 출세를 시키고 말겠다는 결의를 불태운다.
어처구니없게도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인격도야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원 시절에 이르기까지 머리 쓰는 공부에만 주력하지 마음 쓰는 공부에는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학연공화국이다.
명문대학만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된다.
영혼 따위는 악마에게 팔아넘겨도 무방하다.
명문대학을 나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민들이야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건 말건, 공사장에서 분신을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을 일삼는 무리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진실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어찌 그런 무리들을 추종하랴. 분명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거의 모든 분야가 썩어 문드러져서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심지어는 방부제가 되어야 할 종교와 교육과 예술마저도 본질을 상실한 채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제는 대학조차도 거대한 젊음의 공동묘지로 변해 버렸다.
대학생들은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시기를 남풍불경(南風不競) 같은 신세로 보내고 있다.
부모들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지만 자식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와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전부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어린이도 존재하지 않고 젊은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이고 젊은이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무력감에 사로잡힌 늙은이가 한 명씩 들어앉아 불안한 눈빛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도대체 이 따위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정치가들은 입버릇처럼 개혁을 부르짖지만 진실로 개혁을 주도하고 싶다면 교육에서부터 과감한 칼질을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구태와 악습을 되풀이하는 정치가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울하다.
부모들이 아무리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해서 자식들을 공부시키더라도 지금처럼 자기 한입에 풀칠하기조차 힘겨운 세상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이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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