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정상화 어떻게 되나

입력 2004-03-19 15:08:15

지난달 교육부의 특목고 정상화 방안 발표 이후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던 중학생과 학부모들이 고민에 빠졌다.

상위권 입시 기관으로 전락한 특목고를 입학에서부터 학사 운영, 대학 진학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재정비해 설립 취지에 걸맞게 운영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교육부의 의도.

그러나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진로 선택의 폭이 급격히 좁아지지 않을까, 대학 진학에 불리하지 않을까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교육부가 8월 최종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터라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현 상황에서 가늠할 수 있는 대강의 방향과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교육부 초안 내용

현재 고교 1학년생까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년 신입생부터 해당된다.

이들이 수험생이 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목고 학생 대입 특별전형' 방안 이 마련돼 적용된다.

골자는 과학고나 외국어고 학생들이 동일 계열 즉 이공계나 어문계 학과에 진학하지 않고 의대나 법대에 진학할 경우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 단, 동일 계열에 진학할 때는 특별전형이나 내신 우대를 고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 비중을 크게 높일 것이기 때문에 수능 점수로 내신 불이익을 만회하는 지금의 구조는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목고 입시도 달라져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성적보다 해당 분야에 특기와 소질이 있는 학생이 유리하게 된다.

교과 운영도 달라져 특목고가 총 이수단위의 10%(학기당 19시간)를 더 가르칠 수 있는 시간에 해당 분야 교과나 설립 취지에 맞는 교과(과학, 외국어)만 개설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특목고 지정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처럼 외국어고에서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의.약계열 대비반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논란의 쟁점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과연 특목고 학생들이 의대나 법대 등에 지원할 때 얼마나 불이익을 받게 되느냐는 점이다.

교육부 방안대로라면 내신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반고생에 비해 불이익이 커진다.

그러나 절대평가인 평어(수우미양가)를 반영하는 대학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신 반영 비율이 얼마가 되든 특목고생이 불리한 요소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석차를 반영하는 대학이라고 해도 교육부의 기대만큼 크게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2005학년도 서울대 입시처럼 전체 학생을 5등급으로 크게 나누면 특목고생의 불리함은 대폭 줄어든다.

여기에 기본점수를 얼마나 주느냐, 즉 실질반영비율을 얼마로 하느냐도 관건이다.

특목고생들이 지망하는 상위권 대학들 가운데는 실질반영비율이 크지 않은 곳이 많다.

교육부가 계획대로 특목고 학사 운영에 제한을 둔다면 학생들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의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외국어고 학생의 경우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수학, 과학 과목을 배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혼자서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대학들이 필수과목을 여럿 지정한다면 부담은 더 커진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잖다.

현재 시행중인 7차 교육과정은 특성상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정책과 상충된다.

진로 선택권 제한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는 편법적인 발상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현장 분위기

특목고 관계자들은 중학생들의 경우 일단 교육부의 8월 발표를 지켜본 뒤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19일 전국 특목고 교장 회의가 열려 여론 수렴을 하긴 했지만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과학고와 외국어고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과학고의 경우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외면적으로는 "과학 영재를 이공계 인재로 키우는 본래 취지가 더욱 살아나게 됐다"는 주장. 송인덕 대구과학고 교장은 "그동안 의대에 진학하겠다며 자퇴하는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차라리 잘 됐다"며 "내년 신입생부터는 의대 진학 희망자가 아예 못 오도록 홍보할 예정"이라고 했다.

과학고 관계자들은 의대 입시에서도 크게 불리할 게 없다고 보고 있다.

필수과목 대부분이 고교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들이어서 내신에서의 불리함만 극복하면 되기 때문.

이에 비해 외국어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지방의 공립 외국어고는 다소 덜하지만 수도권의 사립 외국어고는 내놓고 의대 진학반을 운영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만큼 의대 진학 희망자도 많다.

그런데 교과 운영이 제한받는다면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다.

법대나 상대에 지원할 때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점은 다행으로 여기지만 당장 내년도부터 우수 신입생 유치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관계자는 "수학, 과학을 학교에서 준비할 수 없게 된다면 현재의 의대 진학반 학생들을 고스란히 놓칠 수밖에 없다"며 "외국어를 잘 하는 법조인이나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는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교육부에 강하게 항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목고 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가 역시 뒤숭숭한 분위기는 마찬가지. 지역에는 수요가 많지 않아 큰 동요는 없지만 서울의 경우 특목고 전문학원이 여럿일 정도로 열기가 높기 때문에 이들로선 당장 존폐를 위협받는 상황. 특히 외국어고 대비 학원은 교육부 발표 후 수강생 상당수가 포기하는 바람에 학원간 연합을 모색하거나 대학입시 학원으로 전환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