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폭설'까지...억장 무너지는 '농심'

입력 2004-03-06 11:16:07

하염없이 내리는 눈더미에 농민들이 피땀 흘려 세운 축사며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졌다.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상처를 간신히 추스리고 힘겹게 일어서려던 농민들의 꿈도 무너졌다. 이제 겨우 조류독감 파동이 끝났다며 한숨 돌리던 축산농들은 주저앉은 축사를 보며 아예 할 말을 잊었다.

6일 오전 8시 의성군 안사면 쌍호리 시설채소재배단지. 마치 눈 폭격이라도 맞은 듯 딸기와 호박을 키우던 비닐하우스 수십동이 쑥대밭이 되버렸다. 한 개라도 건져보겠다며 밤새 눈을 치우던 농민들은 날이 밝아 드러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5일 새벽부터 내린 눈은 50cm가 넘게 쌓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이곳 시설채소재배단지는 작년 9월에 들이닥친 태풍 '매미'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곳. 낙동강이 역류하면서 비닐하우스 수백동이 졸지에 물에 잠겨버렸다. 농가마다 피해액이 수천만원을 넘었다. "이번 폭설로 줄잡아 3천만원 정도 피해가 났습니다. 작년 태풍 피해까지 합치면 1억원이 넘어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는데…". 농민 전하진(46.의성군 안사면 쌍호리)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지난 98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한 임영만(48.문경시 영순면 의곡2리)씨. 지난 1월 전재산 1억여원을 투자해 오이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가족의 꿈을 담은 비닐하우스였다. 밤새 내린 눈은 이 꿈을 무너뜨렸다. 축사며 퇴비사도 힘없이 주저앉았다. 기르던 소 19마리 중 3마리가 상처를 입었지만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치료는 엄두도 못낸다. 비닐하우스 5천여평에 오이를 재배하는 이웃 마을 김학봉(48)씨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비닐하우스 31개동이 모조리 무너져 피해액만 10억원이 넘는다.

예천읍 청복리에서 대한농산을 운영하는 구창모(37)씨는 화가 나서 하늘에 대고 주먹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조류독감이 겨우 진정돼 병아리 입식을 마치고 출하를 준비 중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늘도 무심하지. 이래서는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30cm가 넘게 쌓인 눈으로 닭과 오리 사육장 18동이 무너져 오리 2천마리가 죽었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진 오리사육장에는 쇠파이프가 휘어진 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고, 나뒹구는 사료통 사이로 죽은 오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최근에 1천200만원을 들여 들여놓은 자동사료공급기는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뭐라도 건져보겠다며 직원들을 독려해 보지만 마음만 앞설 뿐 하늘은 구씨의 편이 아니었다.

"그간 조류독감 파동을 견뎌내느라 밀린 인건비며 금융 이자가 얼만데. 겨우 찾은 희망이 하루 밤새 물거품이 됐습니다". 복구도 막막하다. 최근 입식한 오리병아리 8천마리를 당장 처리할 길이 없어 무너진 오리장에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다. 직원들도 살아있는 오리를 한 마리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무너진 오리장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지만 무너진 오리사육장 위로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동식.이희대.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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