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성주군 선남면 복지회관내 5평 남짓한 자원재활용센터. 얼굴이 검게 타고 손도 투박한 40~50대주부 10여명이 빠른 손놀림으로 헌 옷가지를 고르고 수선작업에 열심이었다.
시시콜콜한 가정얘기를 화제삼아 '형님, 아우'라고 불러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에 흠뻑 빠져든 모습.
"성주 명물인 참외 수확에 일손이 한창 바쁠텐데 여기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김명희(48)씨는 "워낙 일상화되고 보람된 일이어서 농사 일을 제쳐두고 달려왔다"며 "일손 공백을 메워야하는 가족들도 우리 응원군"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도심에 비해 자원봉사 환경이 '척박한' 농촌에서 자원재활용센터를 운영하며, 그 수익금과 회원 사비로 홀몸노인과 불우학생 등 딱한 가정환경에 처한 이웃 주민들을 11년째 돌보고 있는 성주군 선남면 선봉회(先奉會) 주인공이다.
단체 명칭에 걸맞게 '먼저 받들자'는 슬로건으로 지역에서 최초로 자발적인 봉사 모임을 만들어 왕성한 활동과 회원 결속력으로 성주 최대 '봉사 우먼파워'를 자랑한다.
선남면에 사는 주부 17명이 지난 1993년 성주군 여성대학을 수료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우리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해 '선봉회'가 탄생했다.
각자 고된 농사일로 빡빡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여성대학을 통해 '작은 봉사로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행동으로 옮겼다.
김씨는 "초기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홀몸노인과 저소득층 10여 가구에 반찬 만들어주기, 청소, 빨래, 생일상 차려드리기, 김장담가주기 등 가장 '기본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매년 설과 추석 명절에는 명절 음식을, 5월에는 노인 경로잔치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회원들이 월 5천원씩 부담하는 회비로 소요 경비를 충당했지만 1997년 자원재활용센터를 운영하면서 이 단체는 봉사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선봉회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성주군이 여성단체의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 투성이던 자원 재활용센터의 운영권을 선봉회로 이관, 선남면복지회관에서 수익사업을 하도록 지원한 것. 헌 옷, 헌 신발, 헌 가구, 헌 가전제품 등을 매년 3t씩 수집하거나 기증받아 사용가능하도록 손질을 거쳐 한 점당 1천원의 금액으로 판매하고 있다.
회원 정인순(55)씨는 "재활용센터 수익금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군민들의 자발적인 기증이 잇따라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쓰레기 수거작업에 나섰다가 헌 옷 등을 모은 성주군 직원들은 야간에 재활용센터 문이 잠겨있으면 수거한 보따리를 출입구에 남겨두고 떠나는 등 성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회원들은 4개조로 나눠 수집된 자원을 정비하는 작업을 거쳐 바자회와 재활용센터 직판매로 현재까지 1천500만원의 재원을 만들어 매년 봉사비용에 보태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초기 5년동안 순수한 회원 자비에만 의존했지만 이젠 수익사업에다 특별회원 6명의 회비(월 1만원씩)까지 보태졌다.
선남면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며 회원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한 공무원 하인숙(40.여)씨는 대가면사무소로 전근을 간 후에도 특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송윤정(33.여) 사회복지사도 이들의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모임의 재정 사정이 좋아지자 시간이 갈수록 봉사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지난 한해동안 '고유 임무'인 홀몸노인과 저소득층 돕기 외에도 복지마을 요양원 식사와 생필품 제공, 결손가정 아동 40명 선진지 견학, 불우노인 40명 온천 목욕봉사와 경로잔치 등을 펼쳐 활동 경비만도 800여만원이 들었다.
노인잔치를 베풀기 위해 회원들이 재활용센터로 전문가를 초빙, 사물놀이와 풍선아트를 배우는 억척도 보였다.
적극적인 봉사활동으로 작년에 경북도지사 환경상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성주군민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11년간에 걸친 봉사활동의 애환에 대해 묻자 시각장애로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성주군 선남면 동암1리 정인조(75), 이세호(70) 부부 얘기를 들려주며 회원들은 눈물을 훔쳤다.
부부 모두 눈이 먼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큰아들이 행방불명돼 생계마저 막막해졌다는 것. 회원들은 10년째 매주 토요일마다 반찬을 정성껏 준비해 허름한 정씨 집을 찾고 있다.
시각장애 1급인 이씨는 지난 1995년 처음 회원들이 방문했을 때 "내 집 물건을 만지지도 말고 방안으로 들어오지도 말라"며 거부했었다.
그러나 회원들의 지극정성이 통했던지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회원들은 "이씨 방문턱을 넘는데 6개월 걸렸다.
지금은 누구보다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고 전했다.
다만 작년까지는 면사무소 지원으로 가정도우미를 정씨 집에 배치해 부부의 수발을 도왔으나 지난 1월부터 이마저 끊겨 이들 부부가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 혼자 사는 배영선(83.선남3리), 서계출(92.용신3리) 할아버지는 반찬, 빨래, 청소도 반갑지만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방문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선봉회 최덕선(53) 회장은 "홀몸노인들이 사람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일주일만에 나타나는 우리 손을 붙잡고 이야기 꽃을 피워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엄마의 지능 장애로 역시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초교 4년생 박용진(12)군과 어릴 때 우울증세를 앓아 집에만 있는 이순주(16)양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회원들은 "마련해 준 반찬을 매번 싹 비울 정도로 잘 먹고, 점점 생활에 활력을 얻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같은 봉사활동으로 가정생활에서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등 두배의 즐거움도 얻고 있다.
김순옥(56)씨는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피부로 느낀 주변 사람들의 딱한 사정들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자 가족 모두 '평범한' 행복에 감사하고 있다"며 "남편은 대리 봉사를 자처할 정도로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씨는 "대부분 바쁜 농사일로 짬을 내기가 쉽지않지만 이젠 봉사가 당연히 해야 할 생활 습관이 됐다"면서 이같은 풍토가 지역사회로 확산되길 기대했다.
성주.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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