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설화의 진위와 배경

입력 2004-03-05 09:06:49

만주와 한반도의 여러 초기 국가들이 분열, 통합을 거치면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부족연맹 형식의 국가가 탄생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각기 조금씩 다른 환경에 터를 잡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이들은 철제 무기를 사용한다.

또 지도자의 지휘 아래 많은 사람이 동원돼 저수지를 만드는 등 농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국가 창설을 주도한 이들이 탄생설화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자신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가야의 수로왕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한 진한 땅의 고허 촌장은 박혁거세가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 알이 박을 닮아 성을 박씨라 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알에서 태어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미 주장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람이 알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학자들은 그러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건국 세력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며 "연맹국가는 구조상 권력투쟁이 심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들을 신격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울 당시는 고조선이 성립될 때와 환경이 많이 달랐다.

한나라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멸망한 후, 주변 지역은 한의 영향력 아래 놓이거나 작은 나라로 해체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부여, 고구려 등 몇몇 세력은 고조선보다 강력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연맹을 구축하려고 했다.

결국 영웅이 등장하지 않으면 난세를 평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대부분의 왕들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늘엔 새가 날고 새는 알을 낳기 때문이다.

즉 알에서 태어난 자는 하늘의 자손이며, 스스로 하늘이 되는 셈이다.

고구려의 한 늙은 농부는 "신석기 시대나 청동기 시대와 달리 철기시대인 요즘은 농사가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농사에는 태양과 물, 땅이 가장 중요한데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들이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라며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주몽에게 강한 신뢰와 두려움을 표시했다.

한편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사로국(신라)을 세우자 위기에 몰린 경주의 한 촌장은 "박혁거세는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 칭하고 강력한 지배층을 형성했다"며 "난생설화는 자신들을 신성시하고 다른 세력을 지배하려는 얄팍한 이념 선전에 불과한데 그런 전략이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건국을 주도한 인물들이 알에서 태어났다(난생설화)는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들 시조들의 선전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출생과 다른 출생설을 퍼뜨려 강력한 지도체제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신문-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비슷한 형태의 책자나 사례들이 있지만 학교 과제물에 활용할 수 있는 실감나는 역사신문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교사,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2월 20일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근대화 시기까지 중요한 사건들을 순차적으로 짚어가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국립 중앙도서관.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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