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급난에서 비롯된 물가 불안이 마침내 라면 등 생필품 값 인상으로 이어져 서민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내수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주름살이 깊어진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내모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소기업을 비롯한 제조업 경기는 물론이고 유통.서비스 등 경제계 전반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원자재 대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원자재 수급난에 발목을 잡힌 우리 경제계 전반을 살폈다.
고철 값은 20일 만에 20%가 올랐고, 원유 값은 지난해 3월 이후 13개월 만에 30달러선을 다시 돌파했다.
구리는 지난 한 달 동안 16.1%가 올라 1t당 단가가 3천달러에 육박하고 알루미늄도 한 달 동안 4.3%나 올랐다.
콩 13.5%, 옥수수 5.2%, 밀 4% 등 공산품.농산품 가릴 것 없이 원자재라고 이름붙은 것은 죄다 인상대열에 합류했다.
◇철강=지난 연말 중국이 이른바 '싹쓸이 구매'에 나서면서 시작된 고철 값 폭등이 불과 2개월여 만에 국내 철강제조사는 물론 철강수요산업 전반을 마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11월 130~140달러 수준이던 국제 철스크랩 가격은 지난달 초 310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작년 하반기 대당 10만원선이었던 폐승용차 한 대 값이 최근 30만원으로 뛰었다.
고철 수입가가 내수가격을 끌어올리고, 내수가 폭등은 다시 수입가 인상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3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포항 한 업체는 지난달 5일 고철을 1t당 313달러에 수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같은 달 17일에는 333.5달러를 줬고, 20일에는 360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만에 1t당 단가가 무려 47달러나 올랐으나 이마저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고 관계자는 하소연한다.
더구나 이 수입 고철이 국내에 도달하는 시기는 오는 5월쯤이다.
따라서 현재 1t당 30만원(달러화 환산치 약 260달러)인 내수 고철도 계속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철강 원자재난의 끝을 점치기 어렵게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포항 ㅇ사 관계자는 1t당 36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 고철시세가 최근 며칠간 340달러 수준으로 약간 떨어지면서 약보합세를 기록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미 시세가 최고점에 이르렀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ㄱ사 임원은 "중국이 봄철을 맞아 다시 철강 생산량 증강에 들어가면서 고철 값도 재차 폭등세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는 등 철강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유가도 급등세=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일 현지에서 거래된 두바이유의 배럴당 원유가격은 30.17달러로 2003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 중질유는 36.78달러로 1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도 13개월만에 가장 높은 가격대를 유지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산유국들이 감산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유가 강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올해 유가를 하향 안정세로 전망했던 정유업계는 배럴당 원유 가격이 30달러선을 넘자, "예상 밖"이라는 반응과 함께 선물구매를 현물구매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당혹스런 분위기다.
유가 급등은 에너지 비용 증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섬, 유화 등 석유화학 관련 산업이 받는 타격이 더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SK(주) 홍보실 김기열 대리는 "원유가 상승은 정유사보다 석유화학 관련업종 전반과 나아가 국민경제 전반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더 크다"고 했다.
포항공단의 화학업종 ㄷ사 한 부장은 "국내 화학 관련업 대부분이 석유 부산물을 기초원료로 쓰고 있다"며 "일부 산유국의 감산정책 발표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뿌리를 통째로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산유국의 감산정책이 짧게는 4~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간 전례로 미뤄볼 때 올해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을 내놓았다.
◇생필품 대란(大亂) 시작=최근 라면과 커피, 우유, 캔참치 등 식음료 중심의 생필품 값이 줄줄이 올랐다.
밀가루와 옥수수 등은 작황부진으로, 캔과 페트용기 식음료는 알루미늄과 레신 등 용기를 만드는 원자재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커피값 인상은 원료수입에 들어가는 해상운임 상승이 요인이고, 국제 펄프 값 상승으로 종이류가 들어가는 대다수 제품가도 인상대기 상태다.
특히 식음료 음계는 포장재료 비용이 상승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과당, 물엿, 포도당 등 주원료인 수입전분당 가격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해 일부 업체들은 상반기에 제품값을 한번 올리고 하반기에 추가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농산품 역시 지난해 작황부진으로 줄줄이 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수확기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올해 내내 가격 상승압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망과 대책=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작년 하반기 이후 본격화한 전세계 물가 인상은 중국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그에 따른 원자재와 소비재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난해 알루미늄, 구리, 주석 등 기초 원자재의 절반을 중국이 가져갔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이 세계 물가를 끌어내렸던 것과 반대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완전히 기초를 다질 때까지 전반적 또는 부분적 원자재난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시작된 원자재난에 따른 제품가 인상이 이달 중순부터 각종 소비재 값에 본격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물가관리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각 국은 원자재 품귀난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철강업계는 중국 톈진에 코크스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등 자원개발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석유화학 업계는 가격이 급등한 나프타를 등유와 경유로 대체하는 등 근본적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또 중국과 인도는 각각의 주력품인 석탄과 철광석을 물물교환하는 바터제를 도입했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철강재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과도한 가격인상을 막고 있다.
우리나라도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는 고철과 철근의 대외수출을 부분적으로 제한하고 매점매석 금지대상으로 지정해 수급안정을 유도하고 있다.
또 니켈괴 등 8개 물품은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사료용 밀 등 8개 품목은 현재 적용중인 할당관세율의 추가 인하를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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